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에크렘 이마모을루 공화인민당 후보의 지지자들이 23일(현지시간) 시내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이마모을루 후보는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신승한 데 이어 집권 여당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다시 치러진 이번 재선거에서 표차를 더 벌리며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됐다. AP뉴시스

‘21세기 술탄’이라 불리며 독주하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 정의개발당(AKP)은 23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큰 표차로 패배했다.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도 통한다. 1994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이래 이 자리가 야당에 넘어간 건 25년 만이다.

아나돌루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터키 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 이스탄불 시장 후보 에크렘 이마모을루는 99.37% 개표 기준 54.03%를 득표했다. 정의개발당 비날리 이을드름 후보는 9% 포인트 가까이 뒤진 45.09%에 그쳤다. 이을드름 후보는 개표 결과가 나온 직후 패배를 인정하고 이마모을루 후보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트위터에 “이번 선거로 민의가 다시 드러났다”며 “이마모을루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굴욕적인 패배다. 이스탄불 시장 선거는 지난 3월 말 전국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졌었다. 정의개발당은 지방선거에서 81개주 중 40개주를 얻으며 선전했지만 3대 대도시인 앙카라와 이스탄불, 이즈미르를 잃어 빛이 바랬다. 정의개발당은 이스탄불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 재선거를 얻어냈지만 결국 3개월 전 표차(0.2% 포인트)보다 훨씬 더 큰 차이로 패배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후 대규모 외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등 이스탄불 경제를 활성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거물 정치인이 됐고, 이 성과를 발판 삼아 2003년 총리에 올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을 얻는 자가 터키를 얻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번 결과를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 통치에 대한 역풍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건국 이래 지켜온 세속주의 원칙을 버리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2017년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3권을 몰아주는 헌법 개정을 실시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압승을 거둬 과거 술탄에 맞먹는 권력을 거머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난도 선거 결과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인 억류자 문제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격렬히 대립하다 보복관세 등 고강도 경제 제재를 받았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폭등하는 등 터키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면서 여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번 패배로 에르도안 대통령 리더십을 둘러싼 회의론이 여당 내부에서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이마모을루 후보는 단번에 스타 반열에 올랐다. 에르도안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경력이 있는 상대 측 이을드름 후보와 달리 이마모을루 후보는 구청장 출신의 신인 정치인이었으나 이번 승리로 일약 거물로 부상했다. 벌써부터 그가 에르도안 대통령처럼 이스탄불 시장 경력을 바탕으로 대권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마모을루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이스탄불 시민 1600만명이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을 되살렸다”며 “여러분은 터키가 여전히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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