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병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토머스 츠다씨가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한 뒤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윤성호 기자

전쟁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연합군은 서울을 내준 뒤 다시 밀고 올라가 수개월째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 해병대 소속이던 토머스 츠다(87)씨는 당시 겨우 18세였다. 그가 속한 중대는 임진강 너머 고지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상대 방어선 인근에 도착한 그들은 어둠을 노려 공격하려고 전선을 옮기고 있었다. 늦게 비가 내리기 시작해 우비를 쓴 채였다.

어느 순간, “타다당” 괴성이 들리며 총탄에 튀긴 흙탕물이 얼굴로 날아왔다.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중공군의 습격이었다. 시끄러운 나팔소리와 함께 적군이 새까맣게 이쪽을 향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전투는 4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날 적군이 쏜 총탄은 1만7000발이 넘었다. 한국전쟁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전투였던 ‘후크고지 전투’다. 휴전까지는 그 뒤로도 14개월이 걸렸다. 그의 중대원 2200명 중 고국에 돌아온 건 610명뿐이었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대부분 부상을 입거나 전사했다.

츠다씨가 전쟁 후 한국을 떠난 지 65년이 지났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69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하얗게 센 머리에 휠체어를 탄 채였다. 그를 포함해 미국인·한국인 교포 참전용사와 가족 77명이 국가보훈처 안내로 한국을 방문해 전우들을 기렸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 등 한국전쟁의 굵직한 전투에서 싸웠던 이들이다. 한국계 미국인 전쟁영웅으로 알려진 고(故) 김영옥 대령의 조카 내외도 이번 방한에 함께했다.

참전 2년째였던 1953년 6월 전투에서 허벅지와 복부, 얼굴을 다친 그는 이듬해 제대해 부상자들에게 주는 퍼플하트(Purple Heart) 훈장을 받았다. 그 뒤에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츠다씨에게 전쟁은 아직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는 “적군 총탄에 맞아 부상당했던 날 밤 전투를 또렷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전투에서 함께 싸운 전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 부르다 나쁜 기억이 떠오르는 듯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본계 미국인인 츠다씨는 “그때는 너무 어려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며 “주어진 임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돌이켰다. 츠다씨는 “한국이 전쟁 때 봤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면서 “남북 관계에 최근 진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내게 달린 문제는 아니지만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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