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1·2·3·4호기의 모습. 뉴시스

최대 15년 장기 계약을 예상했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정비계약이 5년 단기로 결론났다. 한국이 정비를 도맡는 시나리오도 어긋났다. UAE 측 원전 운영사인 나와에너지는 계약을 맺으면서 ‘복수의 계약’이 가능하다며 여운을 남겼다. 정비계약 체결 자체가 무산될 상황에서 ‘불씨’를 살렸지만 기대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롤러코스터를 탔던 이번 계약 과정은 원전 수출에서 치밀하게 준비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UAE 측은 양국의 국빈 교류에도 실리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이를 가볍게 본 과거의 접근법이 계약 자체를 파국으로 이끌 뻔했다. 정부가 전방위로 매달리던 때는 지났기 때문에 한국 원전 수출이 험로에 놓였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3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에서 2건의 정비사업 계약을 체결했다고 24일 밝혔다. 한수원·한전KPS 컨소시엄은 나와에너지와 기획예방정비 등 전반적 정비계약을 맺었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로 등 납품한 제품의 정비를 맡는 걸로 계약을 체결했다.

바라카에 건설된 한국형 원전(APR-1400) 4기가 대상이고 계약기간은 2건 모두 5년이다. 향후 재개약 형태로 연장할 수 있다. 계약 금액은 나와에너지가 필요한 인력 규모 등을 산정해 확정키로 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친 결과”라고 강조했다.


한국전력공사가 2009년 12월 186억 달러(약 21조5000억원) 규모의 바라카 원전 건설 계약을 따낸 뒤 계약서 날인까지 마무리하기는 이번이 5번째다. 다만 과거와는 내용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협상 초기에 그렸던 밑그림 자체가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한국은 단독으로 10~15년에 이르는 장기 정비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계약 금액도 2조~3조원(총액 기준)에 달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나와에너지 측은 한국에 유리한 경쟁입찰 대신 복수 사업자에게 일종의 하도급을 주는 ‘쪼개기 계약’ 방식을 택했다. 나와에너지는 현재 미국 얼라이드파워와 물밑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와에너지가 원하는 방식을 한국이 맞출 수밖에 없는 판이 벌어진 것이다.

정비계약 협상을 진행하면서 한국 측이 부실하게 전략을 짜는 바람에 단기 계약에 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2015년부터 2017년 2월까지 계약이 지지부진했다. 당시에 당연히 (정비계약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초기에는 컨소시엄 형태로 접근한 이번과 달리 한전KPS가 단독으로 협상을 했었다. 정비를 대신할 회사가 없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배짱 협상’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장은 “나와에너지에서 협상 내용에 불만을 품게 됐고 협상을 중단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없어질 뻔한 계약을 되살렸다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원전 수출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꼬집는다. 현재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등에서 원전 수주전을 펼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원전 수출에 전폭적으로 나서던 과거와 상황이 다르다”며 “협상 단계부터 보다 치밀한 접근법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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