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마을 인근 옛 금강농산 공장에서 주민대책위원들이 흉물로 변한 건물을 가리키고 있다. 위원들은 공장을 경매로 사들인 새 주인이 정부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핵심 부품을 떼어 나가는 것을 정부가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익산장점마을 주민들을 살려주세요.’ 마을 경로당 앞에 들어서니 깨끗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어제 낮에 내걸린 것이라고 한 주민이 귀뜸해 줬다. 승용차를 타고 마을 인근을 한 바퀴 돌았다. 한가로운 농촌 풍경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방송사 취재진이 와 마을 곳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 3분의 1 가량이 암에 걸려 ‘집단 암 발병 마을’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곳이다. 지난 20일 환경부가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틀 뒤인 22일, 그 마을을 찾았다.

장점마을 경로당 앞에 설치된 현수막.

“장난했어요 장난…. 정부가 우리를 우롱한 거예요.”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더 격앙돼 있었다. 환경부의 역학조사를 그토록 기대해 왔지만 결과는 모두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일 환경부가 ‘마을 주민들의 암 발병은 인근 비료공장과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어요. 그러나 ‘인과관계는 모른다’고 발을 뺐지요.”

주민대책위원회는 “이런 조사를 왜 했나? 겉핥기식 과정과 결론은 의미 없다”고 반박했다. 위원들은 당일 환경부의 발표 내용을 조목 조목 꼬집었다.

“환경부는 암 발병자가 22명이었다고 밝혔어요. 지난 17년간 병에 걸린 우리 주민은 모두 30명입니다. 그런데 ‘해당 주민이 진단서를 내지 않아서’ 포함시키지 않았대요. 말이 됩니까?”

이들은 환경부의 이 같은 태도가 주민들을 또 다시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원들의 안내를 받아 마을에서 500m쯤 떨어진 그 공장에 올라갔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정도 냄새는 향수예요. 공장이 가동되던 예전에 비하면….”

옛 (유)금강농산 공장. 비료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이미 2년 전에 문을 닫았다. “날씨가 저기압일 때는 집안 창문을 열지 못했다. 더부룩하고 매캐한 냄새가 쉼 없이 들어왔다”고 주민 손왕경(55)씨가 설명해 줬다.

이 공장에서 14년간 일했다는 김인수(70) 이장은 “직원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했지만 참기가 힘들었다”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냥 일했다”고 말했다. 김 이장은 “나도 건강이 별로 좋지 않지만 아내는 암에 걸려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마을이 죽음의 마을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마을 언덕배기에 비료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공장이 가동되며 악취가 마을을 뒤덮고 인근 저수지는 새까맣게 변했다.

이후 주민 95명 중 하나 둘 암 환자가 생겨났다. 안타깝게도 17명이 이미 눈을 감았다. 장애인 전동차를 타고 나온 주민 최모(72 여)씨는 부부가 모두 암에 걸렸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나는 5년 전 위암수술을 해 치료를 했지만 남편은 폐암으로 투병하다 3년 전 눈을 감았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민들은 익산시에 수차례 고통을 호소했지만 ‘문제없다’는 답만 들어야 했다. 급기야 2016년 8월,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 규명과 대책을 세워달라고 거리로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1년 반동안의 역학조사가 이뤄졌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주민설명회에서 “주민들에 대한 환경오염피해 구제 절차를 밟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민과 민간위원측은 집단 암발병의 인과 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주민들은 25일 익산시청 앞에서 이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정부를 규탄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북환경운동연합도 “익산시는 비료공장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행정대집행에 나서 폐기물을 처리하는 동시에 ‘오염토양복원사업’ 추진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4일 전화 통화에서 “지금은 추가 조사의 실효성이 없다고 본다”며 “단 영향권 내에 있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해 올 경우 조사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주민들 외에 공장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괜찮느냐는 의혹도 커가고 있다. 사장 이모씨 또한 지난 해 폐암으로 사망해 직원들의 추적조사가 절실한 상황이다. 뒤늦게 익산시는 경매로 넘어간 1만㎡의 공장 부지를 사들여 공원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이 문제를 방치해 왔던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옛 금강농산에서 생산한 비료푸대와 작업일지 등 서류. 비료 성분 표시에 ‘연초박 폐기물’이라는 단어는 없다.

특히 이 공장에 연초박을 납품한 KT&G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높다. 이 공장은 KT&G로부터 연초박(담뱃잎 찌꺼기) 폐기물을 위탁받아 퇴비와 함께 몰래 비료를 생산해 왔다. 대책위는 “200㎏들이 폐기물 70개가 이틀에 한 번씩 공장에 들어왔다. 공장에 보관시설이나 비가림 시설이 없었다. 비료 성분표시엔 연초박 함량이 들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우리나라 최대 집단 암 발병마을이 된 장점마을. 그 아픔은 계속 진행 중이다. 정부의 역학조사와 주민설명회는 사태를 수습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갈등과 논란만 키웠다. 주민들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았으며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암 마을 오명 씻어내고 청정마을로 만들어 달라”
최재철 주민대책위원장 인터뷰



“우리는 재난마을이에요. 돈 몇 푼 주고 떨어져라 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최재철(59·사진) 익산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은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부아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지난 20일) 주민설명회라고 했는데, 주민들에게는 결과 보고서 한 장 나눠주지 않았어요. (환경부가) 개연성은 있는데,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어요. 모두 책임을 회피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습니다.”

최 위원장은 “이번 역학조사 용역비가 2억3000만원 밖에 안됐다고 하는데, 그걸 가지고 뭘 조사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공장을 경매로 받은 회사측에서 공장내 핵심 부품을 철거해 갔다며 정부가 역학조사 중인 상황에서 어떻게 이를 막지 못했냐고 분개했다.

“우리 동네는 물 맑고 인심 좋은 부자 동네였어요. 한때 주민이 115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다 떠나고 45명 정도만 살고 있지요.”

최 위원장은 마을에 고추와 콩, 고구마 등의 특산물이 있었는데 이 동네에서 재배했다면 반품이 되기 일쑤였다며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털어놨다.

“지역의 한 마을이 ‘죽음의 마을’로 변하고 있는데도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한 번도 와 보지 않았어요.”

최 위원장은 “2010년 9월 비가 올 때 공장 측이 몰래 버린 폐수로 인해 아래쪽 저수지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며 “그런데도 김완주 당시 도지사는 그해 말 이 회사에 우수환경상을 줬다”고 말했다.

“면밀하고 세밀하게 주민들이 요구하는 분야의 조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일했던 직원들 전수조사와 더불어 연초박 폐기물을 위탁 맡겼던 KT&G의 책임도 철저히 따져야 합니다.”

최 위원장은 “‘암마을’이라는 오명을 하루빨리 씻어내고 예전의 인심 좋은 청정마을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얘기했다.

익산=글·사진 김용권 기자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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