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14) “깔치 왔네” 비웃던 아이들… 나중엔 울며 회개

유학 준비 중 잠시 고아원 맡게 돼… 사랑받지 못해 비행 일삼는 원생들 십자가 사랑 깨닫게 해달라 기도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오른쪽)가 1960년쯤 신망원 출신인 김태연씨(가운데)의 장신대 졸업식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로회신학교 박형룡 학장님 말씀을 따라 미국 유학을 결정했다. 학장님은 신학교에서 종교교육을 가르치길 원했던 날 장로교 선교부에 직접 데리고 가 소개하면서 여학생이 유학을 갈 수 있도록 선교부에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선교부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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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장님의 적극적인 추천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영어회화 선생님은 대구 중구 남산동에 계신 캠벨 선교사님의 아내 캠벨 부인이었다. 나는 동산병원 간호사와 함께 선교사님 댁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기초를 닦았다. 어느 날 선교사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와서는 신망원이란 고아원에 가서 좀 도와달라고 청했다.

“고아원 아이들이 원장더러 나가라고 데모를 해서 원장 목사님이 나가버렸지 뭡니까. 지금 선생이 아무도 없다고 하는데 주 선생이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망원은 대구 달서구 성당동 변두리 야산에 있었다. 복숭아밭을 일궈 작은 집을 짓고 고아 50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6·25전쟁으로 집을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도둑질을 배워 비행을 저지르던 아이들을 선교사들이 모아 놓고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아이들의 언행이 너무 거칠어서 지난번 원장이 엄하게 관리하려다 충돌을 빚은 모양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아이들에 내게 던진 첫 마디는 “깔치 왔네”였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여자가 왔다’는 은어였다. 줄임말로 표현하는 요즘 시대의 은어와는 또 다른, 그들만의 언어가 매 순간 쏟아져 나왔다. 어느 날 아침에 내 신발이 없어졌다. 다른 날 아침엔 밥그릇이 모자랐다. 돈 되는 집기를 훔쳐다가 파는 게 일상인 아이들이었다.

한두 아이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살갑게 대해봤지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은 관심받기를 거부했다. 사탕을 주면서 이야기 하려 하면 ‘자신을 이용하려고 수단을 쓰는 것’이라고 해석해버렸다. 사람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탓이었다.

절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시간을 정하고 복숭아밭에 나가 무릎을 꿇고 특별새벽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영혼들을 구원해 주소서. 부모도 소망도 없이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이 동산에서 살다가 한구석에 묻혀도 좋습니다. 저들이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하루는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예배 시간을 가졌는데 기도 중에 아이들 한두 명이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죄를 회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성령이 역사하시자 온 방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울음을 참던 아이들이 한 사람씩 나와 지은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두 대 훔쳤습니다.”

“담요를 도둑질해 팔아먹었습니다.”

“나는 새엄마와 싸웠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 스스로 자기를 돌아봤다. 회개 제목들이 늘어나자 울음소리도 커졌다. 밥 먹을 시간도 지났고 학교 갈 시간도 지나 버렸다. 문득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에 전화를 했다. 고아원에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아이들이 오늘은 등교할 수 없다고 전하고 복숭아밭으로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갔다.

아이들이 복숭아나무 밑에 한 명씩 앉아 울며 기도하도록 했다. 이처럼 강력하게 통회하는 모습을 보기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이튿날 새벽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보다 먼저 복숭아밭에 나와 기도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성령의 역사가 아이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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