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업체들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의 정비사업을 수주했지만 계약 범위나 기간이 당초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3일(현지시간) UAE 아부다비에서 한수원·한전KPS 컨소시엄과 두산중공업이 바라카 원전 운영 업체인 나와에너지와 장기정비사업계약(LTMSA)과 정비사업계약(MSA)을 각각 체결했다고 밝혔다. 바라카에 건설됐거나 건설 중인 한국형 원전(APR1400) 4기를 대상으로 하고 계약기간은 2건 모두 5년으로 정해졌다. 바라카 1호기는 지난해 완공됐고, 2·3·4호기는 공정률이 93%에 달한다. 계약 금액은 나와에너지가 필요한 인력 규모 등을 산정해 정하기로 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친 결과”라고 했고, 한수원은 “양국 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우수한 원전 기술력과 운영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계약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자화자찬할 거리가 안 된다. 계약 형태가 정비사업을 한 업체에 일임하는 장기정비계약(LTMA)이 아니라 복수의 사업자에게 주는 LTMSA로 바뀌었다. 나와에너지가 원전 정비와 관련한 총괄 책임을 지고 일감을 복수 업체에 배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 업체들은 최대 15년의 계약기간을 기대했으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일감이 쪼개지고 계약기간이 크게 줄어 전체 수주액도 당초 전망한 2조~3조원에 턱없이 미달하게 됐다. 이 때문에 한국 업체들이 사실상 하도급 계약을 맺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UAE가 한국 업체에 불리한 계약을 밀어붙인 것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영향이 컸다고 봐야 한다. 원전은 건설·유지·보수·관리하는 데 수십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국가 프로젝트를 탈원전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에 좋은 조건으로 줄 리가 없다. 한국 원전 생태계가 허물어지고 있지 않다면 이런 계약을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라카 원전 정비 업무를 다른 국가가 맡게 되면 독보적인 한국형 원전의 기술과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반원전·탈원전 정책을 폐기하지 않으면 한국 업체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