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국민일보 DB

한보그룹 정태수(전 회장·사진)·정한근(전 부회장) 부자는 12년간 키르기스스탄과 에콰도르 등지에서 함께 도피 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부자는 타인 명의로 신분을 세탁하고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제2의 삶’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25일 “한근씨가 ‘아버지가 해외로 나온 이후부터 계속 모셔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정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대학 교비 횡령 혐의로 2007년 5월 재판을 받던 중 치료를 핑계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행적을 감췄다. 검찰은 이때부터 정 전 회장 부자가 함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카자흐스탄에 입국했다가 범죄인인도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겼다. 검찰은 2010년 정 전 회장이 키르기스스탄인 명의의 위조 여권을 만들어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이 여권을 이용해 2년 전 에콰도르 과야킬에 정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들 한근씨도 신분 세탁해 만든 미국·캐나다 영주권, 시민권으로 에콰도르에 건너갔다.

두 사람이 에콰도르에 정착한 이유는 유전개발 사업과 정 전 회장의 건강 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근씨는 “아버지가 따뜻한 곳을 원해 에콰도르 안에서 적도에 가까운 과야킬에 자리를 잡았다”고 진술했다. 한근씨는 이곳에서 유전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근씨가 제시한 사망증명서 등을 근거로 정 전 회장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련 자료를 재검증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한근씨의 여행가방에서 아버지 정 전 회장의 사망증명서, 유골함, 위조 여권 등을 확인했고 에콰도르 당국을 통해 진위 여부 등을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사망증명서에는 2018년 12월 1일 신부전증으로 인한 심정지로 숨졌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2일 국내로 송환된 한근씨는 “부친 건강이 위독해져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더이상 연명이 어려운 상태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 일가의 은닉재산을 추적하고 있다. 2001년 국세청이 고발했으나 일부 피의자들이 기소중지된 한보그룹의 조세포탈·재산국외도피 혐의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다만 정 전 회장이 최종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면 그가 체납한 2225억여원의 국세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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