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탈피하게 만드는 일자리 창출은 정의로운 사회 출발점… 그걸 만드는 게 혁신성장인데 혁신 이전에 정의만 논해서야
정부가 정의와 윤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통제하려 하면 혁신을 반대하는 것 같은 인상만 강화할 뿐


과연 새로운 청와대 정책실장은 시장에 신선한 메시지를 줘서 혁신성장을 이뤄낼까. 이 정부의 경제 삼두마차 중의 하나인 공정경제를 이끌었다가 신임 정책실장으로서 경제정책 전반을 조율하게 된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씨 얘기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일자리와 소득을 개선하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히면서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세 축의 선순환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기조는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공정경제의 아이콘인 그가 어떻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성장을 실현할지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우려도 된다.

정의로운 사회에 관한 윤리의식만으로 혁신이 이뤄지는가. 자본주의적 시장과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윤리적 배려는 물론 필요하지만, 윤리의식만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증대하는가. 김 정책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기업 관련 발언에 정면 반박한 것을 보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세계에서 경쟁하기에도 벅찬 트랙터 기술 기업에 일자리를 잃는 농민들한테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한다면 너무 큰 부담일 것”이라는 이해진씨의 말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혁신기업가들이 포용사회 건설에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결국 방점은 혁신성장보다는 포용사회라는 윤리적 가치에 찍힌 것이다.

이 정부의 윤리 사랑은 이상한 일도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공정한 경쟁으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실현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한다. 본래 정의는 다양한 사람들이 시장과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윤리적 원칙과 가치이다. 시민들이 각자 자신의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일자리’이다. 경제적 궁핍과 빈곤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와 권리는 실현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최대의 불의는 인간을 단순한 생존의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자리는 정의로운 사회의 출발점이고 전제조건이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사회의 윤리의식도 성숙한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성장과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피해를 조정하는 것이 ‘정의’이지만,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혁신성장’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혁신성장을 오직 ‘윤리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과학과 기술을 둘러싼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혁신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혁신 기업에 과도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을 요구한다.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료하다. 김상조 정책실장이 SNS 계정에 함께 올린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표지 사진과 라구람 라잔의 책 제목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가 이를 잘 말해준다.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정의로움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우리가 묻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과연 혁신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혁신의 빛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기도 전에 정의를 논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적 대변혁기에 있다. 물리적 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하는 고도의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 기술은 생산양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아 노동과 일자리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에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자동화 등에 의해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기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파국의 시나리오가 난무한다. 다른 한편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새 일자리가 창출되기 때문에 노동의 종말은 성급하고 과장된 예견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한 독일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향후 10년 내에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가 거의 비슷해 고용의 균형은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4차 산업혁명으로 전통적 일자리의 50%가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정도로 혁명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4차 산업혁명의 미래사회에 대비하는 것이다. 기업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는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면 된다. “정부 혼자서 잘할 수는 없다”는 김 정책실장의 말이 진정이라면, 정부는 모든 것을 다하려 하지 말고 정부가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이 정부는 정의와 윤리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혁신 기업가들이 의견을 표출할 때마다 사사건건 댓글을 달고 딴지를 걸면, 혁신을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것 같은 인상만 강화할 뿐이다. 윤리의 과잉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때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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