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는 미국의 전쟁 개념과 안보 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사건과 이후 소탕전은 전쟁이란 국가와 국가 간 벌어지는 유혈을 동반한 싸움이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들었다. 이후 미국은 알카에다, 탈레반, 이슬람국가(IS) 등 비정규 무장조직이나 테러집단과의 전쟁에 국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달은 전쟁의 개념에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월 출간된 ‘전쟁의 새로운 규칙: 지속되는 무질서 시대의 승리(The New Rules of War: Victory in the Age of Durable Disorder)’는 새로운 전쟁을 다룬 대표적 저서다. 저자인 숀 맥페이트 조지타운대 교수는 브라운대 졸업 후 미 82공수사단 낙하 교관을 거쳐 아프리카에서 용병생활까지 한 독특한 경력자다.

그는 이 책에서 앞으로 전쟁은 갈수록 ‘음지(in the shadow)’에서 벌어질 것이라며 ‘그림자 전쟁(shadow war)’이란 개념을 자주 언급한다. 그림자 전쟁은 국가가 배후에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채 상대국을 교란하는 행위다. 그동안 미국 등 강대국이 행해온 비밀작전(covert operation)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다.

맥페이트 교수는 정보화 시대에는 화력보다 익명성이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그림자 전쟁의 핵심 개념으로 ‘그럴듯한 부인가능성(plausible deniability)’을 꼽는다. 적국을 공격 하지만 그 주체(국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는 대신 친러 민병대나 용병을 동원한 것, 러시아가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사이버 여론 조작을 시도한 것 등을 예로 든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이란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은밀히 이란을 저지하기 위해 그림자 전쟁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추가 사이버 공격, 이란군이 타국 선박을 공격할 때 쓰는 배들의 전자장치 등을 무력화하는 행위, 이란 내부의 분열 및 불안감 조성, 이란을 대리하는 군사집단을 분열 또는 약화시키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이란은 이미 다양한 비밀작전을 벌이고 있는데, 미국도 본격적으로 대이란 그림자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회색지대, 전쟁도 평화도 아닌 영구적 반(半)전쟁 상태가 21세기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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