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장날 거사 발각됐지만 교회 성도들 앞장서 시위 확산

[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2부> 독립운동과 한국교회 (21) 포항 만세운동 이끈 교회들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열린 만세시위 현장. 이곳엔 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 송문수 장로와 포항교회가 세운 영흥학교 교감 최경성 장로도 있었다. 대구의 만세시위와 보조를 맞춰 포항지역에서의 거사를 준비하던 이들이다. 하지만 최 장로는 대구 시위 현장에서 체포됐고, 송 장로만 홀로 포항으로 돌아왔다. 송 장로는 그를 기다리던 교회의 이봉학 집사, 이기춘 성도 등과 만나 3월 11일 포항 장날에 맞춰 만세운동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송 장로가 대구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갖고 벽보와 선전물을 몰래 만들었다. 하지만 밀정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이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거리로 삼삼오오 몰려나왔다. 11일 오후 소규모 시위에 이어 12일 포항교회 성도들의 대규모 행진이 펼쳐졌다.

당시 포항교회는 포항 북구 중앙동 451번지, 시장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교회는 일찍이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인이 세운 심상소학교에 맞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우리말, 우리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초가 5칸에 불과했던 예배당 안에 학교를 세웠다. 국어 수학 외에 성경과 찬송가를 통해 기독교 정신을 가르쳤다. 학교 설립자이자 교감이었던 최 장로는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며 계몽하는 데 주력했다.

그날 밤 만세 행렬에 앞장섰던 이들은 교회 성도들과 영흥학교 교사 등이었다. 1000여명이 행진에 동참했다. 대구를 제외하면 경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이었다.

포항제일교회 박영호 목사는 지난 21일 ‘포항제일교회 100년’에 소개된 교회의 3·1운동 관련 역사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 목사는 “100여년 전에 교회가 이미 지역의 교육과 독립운동 등에 참여했다”며 “오늘날 많은 교회가 고민하는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이미 그때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항의 3·1운동은 교회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포항의 3·1운동사’를 집필한 향토사학자 이상준씨는 “가장 큰 특징은 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 송라 대전교회 청하제일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지도자들의 활약이 컸다는 점”이라며 “영일청년회도 힘을 보탰지만, 이 지역에 살던 일본인과 이들과 유착된 지역유지들의 반대로 야간 기습시위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가 지난 21일 ‘포항제일교회 100년’에 등장하는 교회의 만세운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포항제일교회 제공

그는 “11~12일 펼쳐진 포항에서의 시위가 계속 퍼져나가 22일 청하면과 송라면, 27일 송라면 대전리 두곡숲 등을 거쳐 연일 동해 장기 오천 흥해 등 각 면과 각 동에서 일제히 만세를 부르는 시위운동으로 퍼졌다”고 소개했다. 청하와 송라의 3·1운동에서 중심지 역할을 담당한 것은 이익호가 설립한 대전교회였다. 당시 이 지역 대표자들이 대부분 체포됐지만, 주민들은 27일 두곡숲에 모여 만세를 불렀다. 이후 아이들도 어른들의 만세운동을 흉내 내며 동네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해서 ‘3·1만세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근 청하의 장날에 열린 만세운동도, 당시 덕성교회(현 청하제일교회)에 부임했던 박문찬 목사와 오용간 이상호 등 성도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 포항면은 일본인이 다수 거주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서도 치안에 신경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운동이 시작됐고, 모두 2900여명이 참여했다. 피해는 사망자 40명, 부상자 380명, 피검자 320명으로 집계됐다.

이후 교회들은 일제로부터 무수한 핍박을 받았다. 당시 많은 교인이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포항교회의 경우 오히려 부흥회를 열고 영성훈련을 통해 영성을 다졌다. 교회와 사회의 회복을 위한 노력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포항의 3·1만세운동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포항제일교회 이두우 장로와 이씨 등이 ‘포항의 3·1운동사’를 집필하면서 그 면모가 드러났다. 이들은 대구와 경주 법원의 판결문에서 최경성 송문수 장로 등 당시 참가자들의 활동 상황을 상세히 찾아냈다.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던 포항면 3·1운동 관련 판결문 원본을 입수해 번역했다. 이 장로는 “포항에서 믿음의 대선배님들의 이력과 활동을 밝힐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은혜로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며 “포항의 3·1운동사가 일제 강점기에 희생된 독립운동가의 신앙업적에 누가 되지 않길 바라고, 그 유족과 신앙의 후배들에게 감사와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의 성도들이 지난 3월 1일 포항소망교회 앞마당에서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포항제일교회 제공

지난 3월 포항시는 100년전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옛 포항교회 자리에서 열었다. 포항제일교회가 시내 외곽 쪽으로 이전하면서 포항소망교회가 쓰고 있다. 일제의 탄압에 이어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도 불구하고 교회 건물은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김판극 안수집사는 “우리 지역 3·1운동을 기독교인과 교회가 주도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며 “한국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사회를 선도해왔던 교회의 기능이 약해져있는데 앞으로 교회들이 그런 역할을 다시 감당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항=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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