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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주선애 (15) 드디어 6년간 준비한 미국 유학길 올라

성경학교 이상근 목사님 도움으로 3번의 시험과 신분 조사 무사히 통과… 전액 장학금과 여비·잡비 지원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뒷줄 가운데)가 1956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 대구역에서 동료 및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망원에서의 시간도 어느덧 2년여가 흘렀다. 대구 고등성경학교(현 영남신학대) 여자기숙사 사감으로 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박형룡 박사님과의 약속도 있었기에 신망원 사역은 늘 함께 기도하던 친구 한순애 권사에게 맡기고 이상근 목사님이 교장으로 계시는 성경학교로 출발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해방 이후 교회가 부흥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성경학교로 몰려왔다. 여자기숙사에만 150여명의 학생이 있었다. 이 목사님은 미국 뉴욕성서신학교(현 뉴욕신학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목회를 하시다가 성경학교 교장을 맡으셨다. 내게 사감 역할 외에도 강의를 한두 시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셨다.

기숙사에선 저녁마다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매일 저녁이 부흥회처럼 뜨거웠다. 학생들은 통성기도를 할 때 그야말로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며 기도했다. 좀 조용히 해달라는 선교사들의 항의가 들어올 정도였다.

나는 아이들을 자제시키기가 조심스러웠다. 학생들에게 시험이 될 것 같아 선교사들이 양보해 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시골 교회에서 갈급한 마음으로 신앙을 갖고 성령 체험을 한 이들을 어떻게 자제시켜야 할지 사감으로서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낮 시간을 나의 공부 시간으로 정하고 학교를 떠나 대구 미국문화원에서 영어공부를 하곤 했다.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직접 사왔는데 고아원에서의 경험이 이때도 유익했다. 영양가 있고 저렴한 반찬거리를 구입하는 요령을 체득했기 때문에 가난한 살림을 이끌어 가는 데 보탬이 됐다.

기숙사에 있으면서 미국 유학을 위한 시험을 치르려고 여러 번 서울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 목사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미국 신학교 입학원서를 써 주시는 등 지도편달을 해주셨다. 당시 미국 유학 시험은 3번 치르게 돼 있었다. 문교부에서 지정한 우리나라 역사 시험과 외무부에서 지정한 영어 시험을 치르고 나면 끝으로 미국 대사관에서 영어회화 시험을 한 번 더 치러야 했다.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에 신분 조사를 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급행료를 얹어주면 더 빨리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기다렸다. 오래 걸리더라도 양심을 버리고 싶진 않았다.

이 목사님은 뉴욕성서신학교가 복음주의 초교파 신학교라서 한국교회와 결이 닮았을 거라며 전공으로 기독교교육학을 추천해주셨다. 내겐 별다른 정보가 없었지만, 이 목사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했다. 그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두고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지만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이 목사님을 통한 지시였음을 확신한다.

얼마 후 신분조사까지 끝나고 출국 준비도 마무리됐다. 미국 뉴욕연합장로교 지도자 양성부에서 전액 장학금과 여비, 잡비까지 지원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공로 없이 받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1950년 박형룡 학장님과 미국 유학을 가기로 약속한 지 꼭 6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전쟁 물자나 구제 물자를 운송하는 배를 이용하도록 돼 있었다. 부산까지 가기 위해 대구역으로 나왔다. 대구역에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신 선생님 동료 학생 등 50여명이 나와 기도로 송별해 줬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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