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보유한 재산을 환수하기 위해 세 번째 시도한 소송의 항소심에서도 사실상 패소했다. 이번에도 법원은 친일 재산이라도 친일재산귀속법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환수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김용빈)는 26일 국가가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를 한 138필지 토지 중 1필지만 국가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회장이 물려받은 친일 재산에 대해 반환하라는 판단이 나온 것은 처음이지만, 이 땅은 도로 등에 딸린 인공수로로 쓸 수 없는 토지인 데다 면적도 4㎡에 불과하다.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부지 등 대부분의 토지는 그대로 이 회장 소유로 남게 됐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조사위)는 2007년 이해승을 친일재산귀속법이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한일병합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행위를 한 자)로 지목하고, 손자인 이 회장이 소유한 197만㎡를 친일재산으로 판단해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 땅은 당시 시가로 3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에 불복해 조사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회장 측은 이해승이 한일병합의 공을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왕족이라서 작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친일재산귀속법상 친일반민족행위의 조건에 ‘한일병합의 공’이 규정된 것을 역이용한 것이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 회장은 2010년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 같은 결론에 비난 여론이 들끓자 2011년 5월 정부는 친일재산귀속법을 개정했다. 한일병합에 공이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된 이들에게 재산을 환수할 수 있게 했다. 법 개정 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한 자에 대해서도 개정법을 적용해 재산을 국고 귀속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정법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각하됐다. 다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 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5월 1심에서 패소했다. 이날 항소심에서는 ‘일부 승소’했지만 토지를 환수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정부는 1필지를 환수하고 이 회장이 과거에 땅을 처분해 얻은 이익 3억5955만원을 부당이득으로 돌려받는 데 그쳤다.

토지 환수에 실패한 주요 원인은 친일재산귀속법 부칙 조항에 있다. 부칙 조항이 ‘확정판결에 따라 친일재산귀속법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는 적용을 배제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이 확정된 경우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개정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정해진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에 돌려주라고 한 1필지는 2010년 확정 판결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개정법이 적용됐다.

독립운동가 후손·유족들로 구성된 광복회 측은 “국민의 건전한 양식과 정의관에 반하는 부당한 판결”이라며 “대법원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주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선고 결과에 대해 상고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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