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설 쓰는 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소수였고 책을 좋아하다 보니 쓰고 싶어진 일반인이 대부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각자 쓴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선배가 반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어주는 방식이었다. 겨우 새내기 딱지를 떼었을 때 선배에게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았다. 나더러 새내기반 반장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자신이 없었지만 거절했을 때 실망할 선배를 떠올리니 도저히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입 회원과 만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암담하기만 했다. 뜨거운 음식을 손에 쥐고 삼키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꼴이었다. 전전긍긍하며 시간만 보내다 약속한 날을 앞두고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거절 전화를 했을 때 선배의 목소리는 평이했다. 때문에 나는 큰 착각을 하게 되었다. 굳이 나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 오히려 어설픈 나보다 경험 많은 선배들이 훨씬 나을 거라고. 합리화는 묘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미안함까지 덮어버렸다. 마침 다른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모임에 나가지 못했고 그 일은 바쁜 일상에 묻히게 되었다. 함께 공부했던 동기가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결혼 상대도 공부를 같이하던 동기였다. 둘이 사귀는 걸 몰랐던 터라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갔다. 오랜만에 보는 회원들이 반가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반가움의 온도가 달랐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로 인해 여러 사람이 불편했다는 걸. 믿고 부탁한 선배에게도 미안하고 갑자기 공석이 되어 반장 자리를 떠맡았을 누군가에게도 미안했다. 처음부터 거절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후회가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후회할 짓을 한다. 후회는 해 봐야 소용없지만 그렇다고 늦은 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자책만 할 게 아니라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 아닐까. 거절 또한 마찬가지다. 마지못한 수락보다 차라리 단호한 거절이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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