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기억 여행을 하며 알았다. ‘퍼주기’가 오래전부터 내겐 친숙한 단어였다는 사실을. 퍼주기를 나는 어릴 적 자주 들었다. “너희 집 가세가 기운 것은, 네 엄마의 퍼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퍼주기가 어떠했는지 잘 몰랐지만, 손이 큰 엄마는 남에게 주기를 좋아했다. 어머니는 집에 찾아온 거지도 깍듯이 대했다.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 밥상, 그릇, 숟가락을 그대로 사용해 거지에게 밥상을 차렸다.

어떤 때 내 숟가락을 가지고 밥을 먹는 거지를 보며 짜증을 내는 내게 엄마는 눈 깜짝 않았고, 대신 엄격한 훈육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어귀 정자에 찾아오는 거지에게 나는 특별 대우를 받는 어린 VIP였다. 어머니는 이웃이 집에 찾아와 어려움을 하소연할 때도 언제나 그들의 품에 무언가를 가득 안겨 주었다. 그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으니 어머니의 퍼주기는 가난한 시절 확실히 뉴스거리였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북한은 10년 만에 최악의 기근과 극심해진 유엔의 경제 제재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북한 인구의 43.4%가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역으로 남한은 지난 3년 동안 남아도는 쌀을 관리하는 데만 약 1조8000억원의 세금을 투입해야 했다.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다. 문재인정부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의 교감 하에 북한의 식량 사정을 고려, 여러 가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9년 만에 800만 달러(약 100억원)에 해당하는 식량을 북한에 보내기로 했다. 2010년 지원한 5000t을 제외하면 한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실로 10년 만의 일이다. 북한 제재를 원칙으로 했던 이명박·박근혜정부는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북한 돕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2002년부터 2017년까지 15년 동안 북한을 도운 나라들을 규모별로 보면 1위 미국 5억2332만 달러(6300억원), 2위 스위스 1억3322만 달러(1600억원), 3위 독일 1억2014만 달러(1450억원)였다. 이외에도 노르웨이 호주 스웨덴 캐나다 등의 기독교 국가가 꾸준히 북한을 도왔으니 제삼자의 인도주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은 북한을 향해 언제나 녹록하지 않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북한 돕기는 국내에서 정치적 논란의 중심이 된다. 한국갤럽이 2019년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국내 여론은 찬반이 팽팽하다. 반대 47%, 찬성 44%, 모르겠다 9%로 오차범위 안에서 반대가 높게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북한 돕기는 퍼주기라는 반론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공산당을 도우려 한다는 이념 프레임을 덮어씌우면 돕는 쪽은 언제나 궁색한 모습이다. 한국이 경제 10대 대국에 속한다고 한껏 목청을 높이다가도 ‘우리도 어려운데 북한 돕기가 웬일이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정부도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다. 원수 사랑을 외치는 한국교회도 이 점에서 다르지 않으니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과 믿음,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말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분단 시절 서독 교회의 동독 사랑은 확고한 성경적 토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섬김의 신학’이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죄인을 섬기러 오신 예수를 따르는 것으로, 예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고난스러운 삶의 현장으로 들어와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한 ‘성육신의 사랑’을 본받는 것이었다. 분단 45년 동안 독일 통일에 이르기까지 이념을 초월한 서독 교회의 동독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확고했다. ‘조용한 개신교 혁명’인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서독 교회의 동독을 향한 사랑은 한 마디로 성경에 입각한 일방적 퍼주기였다. 신명기 15장의 가난한 이웃을 향한 퍼주기는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고하고 분명하다.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신명기 15:7~8)

주도홍 백석대 전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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