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16) 2주만에 도착한 미국… 영어 울렁증에 손짓으로만

조국에 유익한 사람 되지 못하면 태평양에 빠져 죽을 각오 다지며 기도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왼쪽 첫 번째)가 1956년 9월 미국 뉴욕성서신학교 캠퍼스에서 베티 파킨슨 부인(가운데)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배가 부산항을 떠났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무거운 선체가 움직이는데 그제야 ‘정말 고국을 떠나는구나’하는 두려움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당시 내게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게 지구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가는 듯했다. 미국까지는 14일이 걸린다고 했다. 난간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고 떠납니다. 이제 저 까마득하게 보이는 내 조국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돼 돌아오게 해주옵소서. 만약 내 신앙이 떨어져서 그에 합당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이 태평양 바다에 빠져 죽고 돌아오지 못하게 하옵소서.”

지독한 뱃멀미로 14일을 고생한 끝에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도착했다. 미국 장로교연합회 여성부 직원인 도로시 와그너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과거 중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그는 동양인인 나를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대해줬다. 와그너씨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뉴욕에 가기 위해 기차 정거장으로 향했다.

이번엔 3일간 대륙횡단 기차여행을 해야 했다. 기차는 작은 호텔 같았다. 침대로 변신하는 의자도, 무엇에 쓰이는지 모르는 조그만 스위치들도 마냥 신기해 보였다. 아침 식사 때가 돼 식당칸을 찾아갔다. 열차 안에 동양 사람이라곤 나 하나뿐이어서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았다.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본능적으로 주문을 하라는 얘기임을 알아챘다. 알고 있는 영어를 총동원해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밥과 닭고기를 주세요(Rice and chicken please).”

“뭐라고요(What)?”

직원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 영어가 잘못됐나?’ 미국 땅을 밟은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초짜가 아침 식사 메뉴가 몇 가지 정해져 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 리 없었다. 결국 나는 손으로 앞사람의 접시를 가리키며 ‘저거 달라’고 손가락질을 해 버렸다. ‘이제부터 얼마나 망신을 당해야 하는 걸까.’ 식당을 가기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3일을 꼬박 벙어리처럼 보낸 뒤 뉴욕에 도착했다. 선교본부에서 장학생을 전담하는 베티 파킨슨 부인이 나를 반겨줬다. 무척 얼어 있던 나는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데려다주는 대로 따라갔다. 파킨슨 부인은 긴장한 내게 농담을 섞어 가며 딸을 대하듯 대화를 이끌어 줬다. 그는 모든 외국 학생들의 어머니 노릇을 해줬던 정말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뉴욕성서신학교 건물은 어둡고 육중해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따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모두 명랑하고 친절했다. 복도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웃고 인사하며 지나갔다. 아직 그런 분위기가 익숙지 않아 어리벙벙하게 지나가곤 했다.

한국에서 나름 애를 써가며 하노라 했던 영어공부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실망과 좌절에 빠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의 내용을 20%도 알아듣지 못했다.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는데 받아쓰기도 힘들었다. 학생들은 열심히 질문하는데 뭘 물어보는지, 교수님이 어떤 대답을 해주시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낙심도 되고 긴장도 됐다. 이 공부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해내야 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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