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독서 인구가 줄었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곳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대여섯 권의 책을 구입해 손에 들고 방문객을 위해 비치해둔 빈 백 의자에 앉았다. 내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백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이북리더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쳐다보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이에게 이북이 종이책보다 좋으냐고 물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여자아이는 뜻밖에도 자신은 종이책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책을 좋아하지만 집에 짐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책도 이북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집에는 책장도 없고 책이 두세 권밖에 없다고 했다. 물론 집 밖에 나가면 종이책이 있지만 자신은 이북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아이는 이북리더기를 가리키며 이 안에 책이 서른 권이나 있다고 자랑했다. 아이는 내게 이북리더기를 보여줬는데 아이 말대로 그곳에는 수십 권의 평면도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이는 웃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동화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음료를 사러 간 아이의 엄마가 자리로 돌아와 아이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내 생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어린 시절 책과 함께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종이책 없이 자란 아이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책을 방 안에 늘어놓고 형제들과 집 만들기 놀이를 한 경험이, 자신의 책장에 한 권 한 권 책을 모아본 경험이, 밤늦은 시간 혼자 침대에 누워 한 장씩 책장을 넘겨본 경험이, 종이책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아본 경험이 저 아이에겐 없다니. 아이의 부모가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편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이는 실물 책장이 아닌 사이버 공간에 차곡차곡 쌓이는 책을 보며 흐뭇함을 느낄 것이고, 종이책 넘기는 소리가 아니라 액정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해 책장을 넘기는 촉감에 익숙할 것이다. 종이책에 손가락을 베인 경험 같은 건 천 년 뒤 구시대의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서운하진 않았다. 천 년 뒤에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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