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과 관련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고 한다. 중동을 답사한 공무원들은 부정적인 보고서를 올렸다. ‘옥외 작업을 하기에 기온이 너무 높다. 공사에 필요한 물도 턱없이 부족하다. 온통 모래와 돌만 있어 공사하기가 어렵다.’ 체질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공무원들이 보여준 무사안일한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보고서를 보고 중동 진출의 꿈과 의지를 버린 것은 아니다. 한국 경제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는 중동의 오일머니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1세대 재계 총수를 불러 중동 진출의 타당성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총수는 공무원들과는 정반대의 보고서를 올렸다. ‘무더운 낮에는 쉬고 밤에 작업하면 된다. 모래와 돌이 지천에 널려 있어 자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한 물은 차량으로 실어나르면 된다.’ 변화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계 총수의 역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총수의 보고서를 읽고 무릎을 쳤을 것 같다.

중동에 진출한 대표적인 기업은 현대건설이었다. 한국에서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에 참여한 현대건설은 중동에서 건설 붐을 일으켰다. 1975년 이란 반다르 압바스 동원훈련조선소 건설공사에 이어 이듬해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유전지대인 주베일 신항만 건설공사를 수주했다. 주베일 공사 수주액은 당시 한국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9억3000만 달러에 달했다.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해군기지 해상공사를 비롯해 대형 건설공사를 잇따라 수주하면서 중동 신화를 창출했다. 현대건설뿐 아니라 재계의 유수한 기업들과 근로자들이 열사의 땅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국부 창출에 이바지했다. 중동 특수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한국 경제 규모를 키우는 데 톡톡히 일조를 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을 계기로 제2의 중동 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83억 달러(약 9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담은 양해각서(MOU)와 계약을 체결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양국의 원전 협력도 강조했다.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계약 체결로 이어지도록 정부와 재계가 일사불란하게 대응해야 한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호재를 놓치면 안 된다.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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