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서 시작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었던 2017년 3월 22일 서울 대영초등학교를 방문해 교육 공약을 발표한다. “먼저 고교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습니다. 설립취지에서 벗어나 입시명문고가 되어버린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단계적으로 전환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교육 공약 중에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문 대통령 바로 옆에는 몇 달 뒤 문재인정부 초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오르는 김상곤 선대위원장이 서 있었다. 문 대통령의 이 말은 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 210쪽에서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이란 문장으로 활자화된다.

당선 이후 문재인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도 그해 7월 내놓은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똑같이 담았다. 50번 과제 ‘교실혁명을 통한 공교육 혁신’에 고교학점제 등 핵심 과제와 함께 설명했다. 문재인정부 두 번째 교육부 장관인 유은혜 부총리가 국정자문위 사회분과 위원으로 참여하며 관여한 문구였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 대통령 본인과 문재인정부 초대, 2대 교육부 장관이 직접 손댄 정책이란 얘기다.

전국구 입시명문인 상산고 구하기 작업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상산고가 있는 전북 지역 정치인들은 똘똘 뭉쳤다. ‘지역 명문고를 왜 없애려 하는가’란 지역의 여론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여당에서는 전북에서 정치를 시작해 6선을 하며 국회의장까지 지낸 중진 의원도 나섰다.

전북지역 다른 여당 의원들도 전북교육청 때리기와 교육부 압박에 나선 상황이다. 고교 평준화에는 찬성해도 상산고는 건드리지 말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지난 26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를 보면 여당의 기류를 엿볼 수 있다. ‘총선 주판알’을 튕겨본 결과일까. 여당 교육위원들도 일반고 전환 정책을 방어해주지 않았다. 유 부총리와 교육감들이 야당들의 십자포화를 맞는 와중에도 옹호 발언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다른 자사고는 70점인데 상산고만 왜 80점을 넘어야 하나”라며 교육 당국을 더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옳은가 그른가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자. 정치가 교육을 다루는 태도를 짚고 싶다. 집권 세력이 학교현장에 파장이 큰 교육 공약을 던져놓고 상황에 따라 표 계산을 하면서 이리저리 정책을 바꾸는 동안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런 사례는 하나둘이 아니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역대 정부에서 쉽게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수능 절대평가 전환 공약은 지난 2년 동안 교육계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문 대통령 당선→정부 대입안 수정→누더기 대입안 발표→반발→결정 유예→하청·재하청 책임 떠넘기기→혼란 가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이 표 계산하며 책임 떠넘기기를 벌인 탓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역대 최대 규모로 사교육비가 폭증했고 학생 학부모 몫이 됐다. 대입 혼란 탓에 사교육비가 늘었다는 주장은 시민단체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사교육비 폭증 원인을 설명하면서 내놓은 분석이었다. 그래서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졌던 대입 혼선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진행되고 있는 자사고 파문이 오버랩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점은 이런 악순환 고리를 끊자며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주장하는 여당 의원들이 ‘상산고 구하기’에 나선 사실이다. 여당이 주도하는 국가교육위 설치법은 교육의 정치 중립 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치인 입김에서 교육을 풀어주자는 논의다. 지난 4월 법률 제정을 위한 공청회도 진행했다. 여당 의원들은 공청회에서 국가교육위 정치적 중립 확보 방안과 교육감에 초·중등 교육 권한 이양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다른 지역은 평준화해야 하지만 내 지역 입시명문은 예외다.’ ‘교육은 정치 중립이 중요해도 표밭 흔들리는 건 못 참는다.’ 적어도 이들이 교육 100년 대계를 입에 올릴 그릇들은 아니지 않은가.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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