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17) 태극기 달아 놓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항의

전쟁 후 고통받는 우리나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미국과 비교돼… “한국은 영적으로 축복” 응답받아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가 1956년 미국 뉴욕성서신학교 기숙사 책상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여학생 기숙사에 있는 자매들은 친절했다. 무엇이든 도와주려 했다.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 다시 정리하고 숙제를 날마다 제출했는데 타자도 서툴고 영어도 누군가가 교정을 봐줘야 했다. 미국 학생들보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외출은 주일에 교회 가는 것 외에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시간이 아까워 양치하면서도 공부할 것을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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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기도시간이 사라졌다. ‘이건 아닌데. 내가 주를 섬기기 위해 공부하는데 기도도 못 하고 공부에만 열중하는 건 내 정체성이 무너지는 거야.’ 한국에서 아침마다 조용히 주님과 교제하던 시간이 그리웠다. 기도하다 문득 하늘을 보면서 속마음을 내뱉었다.

“하나님 아버지, 나는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면 죽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보따리 싸서 집으로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귀국해 버리면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할지 고민이 됐다. 마음속에 싸움이 또 하나 생겼다. 전쟁을 겪은 지 몇 해 안 된 황폐한 나라에서 고통당하는 내 백성을 생각하며 그들을 간절히 돕고 싶었다. 미국에 와 보니 물자가 차고 넘치는 데다 모든 게 화려하고 사람들은 사치스러웠다. 쓰레기통만 봐도 이 많은 종이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아까웠다. 모든 게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도록 마련돼 있었다.

“하나님,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축복해 주시면서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고통을 지나 이제 좀 살 만하니까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을 죽게 하십니까. 살아 있는 사람도 생필품이 모자라고 집 없는 피난민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불공평하십니다.”

기숙사 방 담벼락에 태극기를 달아 놓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항의가 쏟아져 나왔다. 어느 날 꿈속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얘야. 미국은 물질로 축복했지만 네 나라 한국은 영적으로 축복하지 않았느냐.” “아멘. 하나님 말씀이 맞네요. 우리가 받은 축복이 더 큰 축복입니다.”

내게 기도는 생명줄 같았다. 열심히 공부해야 했지만, 공부가 기도만큼 가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열심히 기도하려면 공부를 못하고 열심히 공부하려면 기도를 못 하게 됐다. 어느 날 아침 기도하다 졸고 나서 일어나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도를 앉아서 하지 말고 일어서서 다니면서 하자.’ 복도를 따라 식당으로 가면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걸어다니면서, 화장실을 가면서 기도하면 졸지 않겠다 싶었다.

복도를 걸을 때 혼자 중얼거리면서 기도하는 게 습관이 됐다. 화장실에서도, 목욕하면서도 주님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기도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앞으로 크리스천들은 이런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하겠구나.’

지금도 나의 묵상기도는 새벽기도뿐 아니라 일상의 기도도 포함된다. 일상의 묵상기도가 있게 된 건 그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가장 바쁠 때 가장 기도를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크리스천들은 일상생활 가운데 기도하는 시간이 줄고 자기도 모르게 ‘선데이에만 기도하는 크리스천’이 돼간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든 기도에 깨어 있어야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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