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금처럼 북핵 해결에 관심 갖고 집중한 적 없어… 북한도 이 기회 놓치지 말아야
상징성이 큰 판문점에서의 회담에 문 대통령이 빠진 것은 한국 외교의 실패


북한의 비핵화 과제는 여전히 남았다. 이번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한 것은 절차와 형식, 장소의 의미로 봐서 파격이었고 역사적 사건이다. 작년과 금년의 정상회담 이후 알 수 있었듯 이벤트가 본질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이번 만남은 정말 한반도 문제를 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실제로 이번 회동을 계기로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재가동될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괄적 합의를 추진하고 이를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주도하는 협상팀을 만들어 북한과 실무협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며 제재는 유지된다고 했다. 이것으로만 보면 미국의 빅딜 접근법에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한편 판문점의 파격 회동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김 위원장을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후 30여년 동안 미국이 이렇게 북핵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집중한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과 수교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이 북핵 문제 해결의 기회라고 할 것이다. 이때 북한은 과감하게 미국과 협상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좋다.

북한은 30년 전 그러한 길을 선택한 듯했었다. 냉전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해 한반도 냉전을 종식하는 데 동의했다.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조치 협정을 비준해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았다. 내부적으로는 민생경제를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었다. 그러한 노력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북한은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중진국 선두에 서 있을 것이다. 남북한 관계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흐름을 거슬러 핵 개발에 주력했으며, 만난신고를 다 헤치고 결국은 핵무력을 완성했다.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기회를 놓쳤다.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경제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핵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북한은 핵무력을 완성한 지금도 여전히 군사적 위협 제거와 체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핵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북한은 핵이 없어도 지정학적으로 안전이 보장돼 있다. 한국을 포함한 주변 어느 나라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의도가 없다. 지금 주변국들이 북한을 적대하는 것은 핵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체제보장의 첫걸음은 비핵화에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통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며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길이다. 핵을 보유하고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 북한 비핵화가 복잡한 문제 같지만 지도자가 결단만 하면 단순한 문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가 있을 때 미국의 포괄적 해법을 수용해 아주 단기간에 동시적으로 비핵화를 완수하고 관계 정상화를 이룩하는 것이 좋다. 단계적 해결방안은 최종 상태가 어떠하며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잘해야 핵군축이고 사실상 핵보유 상태를 지속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실패한 바 있으며 남북한에 다 나쁜 방안이다.

또 하나 우리에게 진하게 남는 문제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동행한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회담장에 없었다. 아마도 북한이 3자회담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문 대통령이 동참하지 못한 이유를 뭐라고 해명해도 군색하다. 판문점은 분단과 대결, 평화와 통일이라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 주제를 발신하는 매우 상징적인 장소다. 한반도 문제의 주 당사자인 문 대통령이 거기까지 가서 그런 주제를 논하는 자리에 빠진 것은 아무래도 모양이 서지 않고 징조도 좋지 않다. 이것은 분명 한국 외교의 실패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한민족이고 남북한이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지켜온 원칙이었다. 남북한은 1972년 7·4 성명에서부터 시작해 남북기본합의서, 6·15 남북공동선언, 4·27 판문점선언 등 중요한 계기마다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합의했다. 과거 북한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미국과 협의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미국은 그 문제는 남북한이 당사자로서 풀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번 판문점 회담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도 관련된 문제다. 북한이 핵을 무기로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남한을 배제하려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번 회담에 빠졌다면 꺼림칙하다. 북한은 최근 문 대통령을 향해 끼어들지 말라고 했다.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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