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전 오늘(1972년 7월 4일), 남북이 동시에 공동성명을 발표한 날이다. 중앙정보부 부장 이후락이 흑백TV에 나와 북한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고 왔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평양, 김일성…. 함부로 입 밖에 냈다간 잡혀갈 만한 표현들이 나왔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단지 막연한 두려움과 통일에 대한 기대가 섞인 놀라움만 있었다. 남북 간 최초 합의라는 역사적 평가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7·4 공동성명은 남북 독재자의 권력 기반 강화에 이용됐다. 공동성명 이후 얼마 안 돼 남한은 유신 헌법을 공포했고, 북한은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했다. 남북 모두가 격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공동성명 이전에 그런 정치적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시각도 있다.

공동성명 문구 해석을 놓고 남북은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통일의 ‘자주’적 해결에 대해 남한은 남북이 당사자가 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토대로 하는 자주로, 북한은 외세 배격을 통한 배타적 자주로 주장했다. ‘평화’에 대해서는 남한은 북한의 무력도발 포기와 상호불가침으로,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해석했다. ‘민족 대단결’은 자유와 민주 바탕 위의 민족적 이질화 극복, 남한의 반공정책 포기 및 국가보안법 폐지를 각각 생각했다. 같은 문구를 놓고 정반대 해석을 했으니 의미 있는 대화가 진전될 리 없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고 판문점에서 최초로 북·미 정상이 회담을 가졌다.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장면이 여러 개 나올 만큼 세기적인 리얼리티 쇼였다. 교착 상태였던 북·미 협상의 대화 모멘텀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선 정반대의 평가가 나온다. 일부 야당과 보수 세력은 우리 땅에서, 우리가 당사자인 현안 문제 논의에, 우리 대통령이 빠진 북·미 회담이 이뤄졌다고 비판한다. 처량한 신세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청와대와 여당은 북·미 정상 간 대화에 집중하기 위한,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결단한 형식이라고 반박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벨 평화상은 두 사람이 가져가고 평화는 우리가 가져오는 전략이라는 소개까지 했다. 7·4 공동성명 때는 남북한 시각차가 더 이상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지금은 남남갈등이 비핵화 협상 진전을 가로막는 요소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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