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부터 과학적 재능 “여호와께서 예비하셨죠”

미 MIT 해커톤 대회 우승 고교생 ‘이레’의 달란트

미국 MIT 해커톤에서 우승한 이레군(가운데)이 지난달 26일 경기도 용인 씨앗국제학교에서 어머니 김정신 교장, 아버지 이민홍 목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용인=강민석 선임기자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정보기술(IT)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을 선도하면서 해커톤(hackathon)이 주목받고 있다.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다.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기획자 등이 한 팀을 구성해 제한된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애플리케이션이나 웹 서비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하는 대회다.

구글 아마존 인텔 페이스북 네이버 삼성 현대 등 유수의 글로벌기업들이 해커톤을 개최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만 6000여개의 대회가 열렸다. 그중 지난 3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열린 해커톤의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한국인 소년 이레(18)군이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예비하심'이란 뜻이다.

방학을 맞아 귀국한 이군을 지난달 26일 경기도 용인 기흥구 씨앗국제학교(교장 김정신)에서 만났다. 악수를 나누며 축하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이군은 "하나님께서 하셨어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이어 "해커톤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부터 대회를 마치기까지 모든 순간이 기적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틀간 진행되는 해커톤 첫날부터 이군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같은 학교에서 함께 출전한 학생들로 팀을 꾸리기로 했는데 정원이 초과되면서 이군만 새로 팀을 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개막 직전 가까스로 개인 출전자 7명으로 구성된 팀이 탄생했다. 팀명은 '길잡이(way finder)'. 오랫동안 합을 맞춘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다짐과 길잡이가 돼 줄 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이름이다.

이군은 "스탠퍼드대 학생, 통계학자, 교육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팀의 막내로 들어갔는데 첫 모임에서부터 100개가 넘는 아이디어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면서 "거대한 에너지가 하나로 모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레군이 지난 3월 MIT 해커톤 참가 당시 팀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씨앗국제학교 제공

팀에서 결정한 주제는 'IT를 활용한 채용 및 직무환경 개선'이었다. 이군은 가상현실(VR)로 시스템을 만들고 결과물을 테스트하는 작업을 맡았다. 그는 "VR로 근무환경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조직 내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돕고, 직원 채용 시에도 근무환경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였다"고 소개했다. 이군은 명함에 삽입해 둔 QR코드를 스마트폰에 입력하면 VR로 근무환경을 보여주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틀 동안 치열하게 토론하고 프로토타입(상품화에 앞서 핵심기능만 넣어 제작한 모델)을 보완한 끝에 길잡이 팀은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외인구단이 만든 쾌거였다. 이군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그것도 해커톤 무대 처녀 출전에서 우승팀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상위권 진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학교 출전팀과 함께 대회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다시 시상대에 오를 수 있게 된다면' 우승소감을 뭐라고 말할지 물어봤다. 이군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군이 지난해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산학협력엑스포에서 촉각인터페이스를 활용한 웨어러블 마우스를 소개하는 모습. 씨앗국제학교 제공

"해커톤 출전을 통해 팀워크의 힘을 알게 됐습니다. 서로의 재능을 신뢰하고 힘을 모은다면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열매가 '우승'이란 결과입니다."

아들의 수상소감을 듣던 아버지 이민홍(화성 그교회) 목사와 어머니 김정신 교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은 이군에 대해 "호기심 천국에 사는 아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생후 18개월 때 작은 목욕탕에 앉아 "물에는 미는 힘이 있다"며 부력을 표현해 냈고, 3세 때부터 각종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게 최고의 놀이였다.

학습지 한 번 풀어본 적 없었던 아이는 초등학교 때 수학에서 50점을 받았다. 과학과 음악 과목에선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지만 지식을 주입하는 수업 시간엔 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영재와 문제아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결국 3학년 1학기를 끝으로 이군은 공교육 현장을 떠났다. 홈스쿨링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도전이 공백을 메웠다. 특히 국제의료봉사회와 동행한 필리핀 오지, 인도네시아 한센인 마을 등 의료선교 현장은 '소수가 걸어가는 타인을 위한 삶' '경쟁이 아닌 나눔을 통해 얻는 성공'을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됐다.

김 교장은 "나도 한때는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들고 아이에게 매를 들던 엄마였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레를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아이라고 생각하고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함께 일궈가는 동역자로 양육하는 게 엄마로서의 소명임을 깨닫고 시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부모는 창의성을 저해할 만한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흥미를 갖게 된 분야를 마음껏 탐구할 수 있게 지원했다. 영어는 이군이 14세 때 컴퓨터와 인공신경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15세엔 청년 과학도들로 구성된 스타트업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해 인공신경망 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했다.

창의성을 위한 자유함 속에서 유일하게 타협하지 않았던 건 신앙이었다.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묵상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이 목사는 "이레가 미국에서도 매일 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수시로 성경에 대한 궁금증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온다"며 "과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을 물어올 때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부분을 역으로 설명하기도 한다"고 했다.

올해 초 EF Academy 뉴욕 캠퍼스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면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군은 오는 9월부턴 오클라호마과학고 고교장학생으로서 대학 강의도 이수할 예정이다.

"발전된 과학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시대라고 하잖아요. 생명의 귀함을 지키고 세계를 하나님나라로 바꿔갈 수 있는 기업을 창업하고 싶어요. 구글 애플 삼성도 깜짝 놀랄 만한 회사를요."

용인=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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