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껏 혼자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늘 친구나 가족과 함께였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홀로 장거리 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만나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친구의 여행담에 혹해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해 보기도 했으나 막상 실행하려니 걱정부터 앞섰다.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자잘한 걱정거리지만 여행 의지는 쉽게 꺾이고 속된 말로 ‘이불 밖은 위험해’를 곱씹게 된다. 요즘 스페인의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예능 프로를 다시 보기 중이다. 개성 강한 배우 셋이 요리와 접객 잡일을 나눠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여간 재미있지 않다. 간간이 비치는 산티아고의 고즈넉한 풍경도 마음을 느긋하게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언어도 국적도 다른 순례자를 배우들이 어찌 감당할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배우보다 순례자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들은 장거리 도보 여행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길을 떠나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충만함으로 빛이 났다. 햇볕에 그을리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졌어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어깨를 짓누르던 커다란 배낭을 털썩 내려놓을 때면 덩달아 내 어깨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한 순례자가 담담한 어투로 말한다. “떠날 때는 꼭 필요할 것 같던 물건이 막상 여행을 하다 보면 짐만 될 뿐이란 걸 알았어요.” 그는 많이 버렸다며 환하게 웃는다. 몇 백㎞의 기나긴 길을 걸으며 그가 버린 것이 물건뿐이었을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신을 괴롭혔던 묵은 감정들 또한 하나씩 내려놓지 않았을까. 그게 무엇이든 여행이 끝날 즈음의 그는 떠나기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듯하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여행길도 마찬가지다. 삶도 여행도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어쩌면 대책 없고 무작정인 여행이 오히려 인생의 예방주사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두 손에 잔뜩 움켜쥐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중이라면 무작정 길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비움과 채움의 지혜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의미는 차고 넘칠 테니.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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