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년간 박물관·미술관 186곳 더 짓겠다는 정부
문화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라는 걸 모르는 발상

부족한 것은 운용할 사람과 프로그램이지 공간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새로운’ 주문을 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 밀착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하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과거 같은 토목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문화·복지 시설에 투자하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국민이 제대로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고 경기도 진작시킬 수 있을 거라는 이중 포석이었다. 사실상 경질된 윤종원 당시 경제수석이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시점인 6월 말, 문화체육관광부는 앞으로 5년간 박물관·미술관 186곳을 더 짓는다고 발표했다.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계획을 통해 전 국민의 박물관·미술관 이용률을 같은 기간 지금의 16.5%에서 배 수준인 30%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문화야말로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라는 걸 청와대와 공무원만 모르는 것 같다. 문화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공간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진짜 투자’를 먼저 하는 것으로 순서를 바꿔야 한다. A씨의 하소연을 들으면 점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최저 시급 받아요. ㅠㅠ 아르바이트생도 아닌데…. 3개월짜리, 6개월짜리 면접도 봤다니까요.” 올 초 취직을 했다면서 이런 ‘웃픈’ 소식을 전하는 A씨의 이력을 보자. 국내 유명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딴 29세의 그녀는 미국 주립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했다. 전공은 물론이고 영어도 유창하지만, 대학원 졸업 후 원서를 내밀 수 있는 곳은 육아휴직자들의 ‘땜방’ 자리 공모였다. 결국, 그녀는 지방행을 택해 지역의 국공립미술관에서 ‘공무직’으로 취직할 수밖에 없었다.

공무직은 문재인정부 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생긴 새로운 직군이다. 공무원연금 등 복지는 쏙 뺀 채 정년만 보장해주는 이 기형적 직군에는 청소·시설관리 등 노무직 종사자들이 주로 포함된다. 문화예술 분야 신입도 공무직으로 뽑는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대구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은 인력이 태부족하다 보니 학예사 업무를 도와주는 보조 인력으로 공무직을 활용하는 편법을 쓴다. ‘코디네이터’란 근사한 이름으로.

석사 학위 소지자인 공무직 A씨의 급여는 최저임금인 월 174만원 정도. 계약직에 뽑힌 동료보다 안정적이라지만 공무직은 승진이 안 된다. 한마디로 미래가 없다. 그런데도 말이 보조이지 메인 업무를 혼자 도맡는 공무직도 많다. 저녁 6시 ‘칼퇴근’은 꿈도 못 꾼다. 전시 일정이 한번 잡히면 밤 10시, 11시까지 야근하는 건 부지기수이지만, 초과수당은 받지 못한다. 이런 사정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다른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가 사람이 아니라 건물에 투자하겠다니 말이 되냐고 A씨는 버럭 화를 내기까지 했다. 정부 논리는 단순하다. 박물관·미술관 하나당 인구수를 현재의 4만5000명에서 2023년 3만9000명으로 줄이면 더 많은 사람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거라는 발상이다.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높이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우리에게 부족한 건 공간인가, 사람인가. 따져봐야 한다. 서울만 해도 미술관은 적지 않다.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유휴공간만 생기면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습관’이 됐다. 2005년 여의도환승센터를 짓다 발견한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도 미술관으로 변신해 2017년 개관했다. 박원순 시장까지 참석해 거창한 개관 행사를 했고, 개관전도 열었지만 이후 제대로 된 전시를 하지 못했다.

그곳은 층높이가 낮고 습도가 높아 전시하기에는 맞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민들이 향유할 새로운 창조적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 그 답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지방이라 해서 문화공간의 부족이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군 단위에도 으리으리한 문화예술극장이 들어서 있다. 그곳만 제대로 활용해보라. 서울로 역수출하는 멋진 전시나 문화 프로그램이 개최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요즘은 ‘장소 특정적 미술’이 대세이니 허름한 농가에서도 얼마든지 문화행사가 열릴 수 있다. 부족한 것은 운용할 사람과 프로그램이다.

주민 곁에 덩그러니 웅장한 미술관 지어놓는다고 그곳에 가지 않는다. 진짜 재미있는 전시, 눈높이에 맞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시골 할머니들도 미술관에 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의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이후 국무회의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창조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계에 필요한 것도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번듯한 일자리에서 나온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부터 짓자고 하니 토건 국가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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