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구석에서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만화책을 보며 키득대는 남학생,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쥐어주고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는 젊은 엄마, 창문 너머 거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 목소리, 오래된 종이 냄새와 눈앞을 부유하는 먼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헌책방의 풍경이다. 한때 가장 자주 들르던 공간은 바로 헌책방이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매주 방문하던 헌책방이 있었다. 대체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곳에 방문했는데 골목 깊은 곳에 있었으므로 가는 중에 저절로 무거운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좁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 책 구경을 하다 보면 기분이 나른해지며 긴장이 풀렸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헌책방 안을 샅샅이 뒤져 희귀본이라도 발견하면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뻤다.

헌책방에서 사 온 책에는 책의 이력이 묻어 있었다. 선배와 후배가, 연인들끼리 책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잘 알려진 소설의 ‘상’권을 펼치자 속지에 예쁜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훈에게. 앞으로 상하권으로 나온 책은 상권은 내가 갖고 하권은 너에게 주기로 했어. 나중에 결혼하면 합칠 거니까 잘 보관해.’ 상권만 헌책방에 꽂혀 있는 것을 보니 연인은 이별을 한 모양이었다. 책의 속지에 적힌 메모를 통해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책에 그어진 밑줄을 따라 읽다가 책을 사서 나오곤 했다.

며칠 전 유명 온라인 서점에서 운영하는 중고서점을 방문했다. 중고서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깨끗한 장소와 말끔한 책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간판이 없다면 중고서점이라는 것을 알기 힘들 것 같았다. 중고책을 매입하고 매매하는 방식도 합리적이었다. 좀 더 높게 값을 쳐달라고 주인아저씨와 흥정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오래전 헌책방 주인들이 분명한 기준 없이 값을 매기던 것과 달리 비교적 명확한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었다. 낙서가 심한 책, 물에 젖은 책은 아예 매입이 되지 않으므로 더러운 책을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조금은 허전하고 섭섭한 기분이 들었는지, 그곳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는지 모르겠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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