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교회 간판 위에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써 붙이고 다짐

<12> 목회의 원리 ②

이수훈 당진동일교회 목사가 1996년 농촌 폐가에서 교회를 개척한 지 1년만에 교회 건물을 짓고 이듬해 평신도 지도자들을 모아 훈련시키고 있다. 당진동일교회 제공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기 위해 이새의 집에 찾아갔다. 이새는 아들들을 정결하게 단장해 사무엘 앞에 세웠다. 사무엘이 장남 엘리압을 보자 마음에 감동이 됐고 기름을 부으려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인가. 용모와 키, 겉모양, 조건은 그럴듯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버리셨다고 하셨다. 다윗을 데려오자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다. 다윗은 그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됐다.

1997년 교회개척 초기 하나님이 늘 나를 보고 계시며 나를 달아보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좋다고 좋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길을 가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지금도 자신이 없는 부분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다윗의 어떤 부분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셨단 말씀인가. 궁금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 그렇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사람이었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아 섬기는 일이다. 혹시 내 맘대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울 왕처럼 자기 좋은 대로 사람들 인기를 기대하며 설쳐대고 있지는 않은가.’ 항상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살게 하셨다.

다윗의 어떤 부분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셨을까를 생각하다가 사무엘상하 말씀을 3년간 주일예배에서 설교했다. 지금까지 설교하면서 그때만큼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주중엔 자정이 되도록 전도하는 날이 많았다. 늦은 밤 강단에 엎드리면 가슴 깊은 곳에서 벅찬 기쁨과 감사가 차올랐다. 몸은 피곤한데 영혼이 새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미천한 전도자인데도 매주 말씀이 기대됐고 기다려졌다. 신비한 은혜의 시간이었다.

토요일은 전도한 사람들을 챙기다 보면 밤이 됐고 설교준비는 그때부터 시작했다. 거의 날을 꼬박 새우고 눈이 뻑뻑한 가운데 피로 속에 주일 새벽 설교를 했다. 그리고 녹초가 된 몸으로 주일예배 강단에 올랐다. 그런데 하나님은 설교시간 내내 내가 말하는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늘 느끼게 하셨다.

당진동일교회는 그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매달 세례를 베푸는 축복을 누리게 하셨다. 정말 많은 성도가 전도돼 교회로 왔고 첫 신앙인데도 거의 정착했다.

다윗은 왠지 미덥지 않은 아들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다윗을 대하고 있었다. 이번엔 전쟁에 나간 아들들의 소식이 궁금한 아버지가 다윗의 손에 도시락을 들려 심부름을 보낸다.

성경을 보면 그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삼상 17:17~18)

아버지의 믿음은 다윗보다 증표에 더 비중이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양치는 사람들에게 양을 부탁하고 길을 떠난다.(삼상 17:20) 다윗의 특별한 책임감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전장에서 골리앗을 보고 이렇게 외친다.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32절) 모든 사람이 다 살겠다고 숨어버리는 그 현장에 심부름 간 소년이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년의 눈에 골리앗은 키가 크고 장대한 싸움꾼이었지 장수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대적자일 뿐이니 주의 종이 가서 싸우겠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다윗의 중심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책임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자세 아닌가. 사람도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겐 일을 맡기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시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되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책임지고 살고 있는가.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부끄럽고 죄송하고 창피했다. 초라한 내가 교회 이름을 들고 서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내 앞에는 한없이 가난하고 연약한 성도들만 있었다. ‘이들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주님의 존귀하신 이름이 나 때문에 땅에 떨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초라한 제 모습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저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혹시 제가 가난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까 두렵고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 할까 두렵습니다.”

이 기도를 새벽마다 부르짖었다. 그리고 교회 간판 위에 작은 글을 써 붙였다, ‘위대한 교회 건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문구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의 각오를 다잡았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