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에 대한 경제전쟁의 성격이 짙다.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조치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정부 일각의 분석은 희망사항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기류와 일본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이번 제재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관계의 초석까지 허물 수 있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치밀하게 준비한 도발이다.

일본이 보복할 것이라는 신호는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공식 비공식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경고를 보낸 정황이 확인된다. 일본 정치인들은 “반도체 등 한국 경제에 가장 중요한 분야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제재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예고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뒤통수를 맞은 기색이 역력하다. 긴밀한 한·일 경제 생태계에서 일본 기업도 피해를 볼 것이 분명한 경제 보복을 일본이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낙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외교는 대화와 협상 등 평화적인 방법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모든 활동을 일컫는다. 전통적으로 외교의 제1목적은 전쟁 방지다. 이런 점에서 사전에 분쟁 예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갈등이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는 외교의 기본 속성이자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예방 외교의 첫 단계는 조기경보다. 위험 징후가 나타나는지 파악하고 경고하는 것이다. 정부는 도발의 징후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책임이 무겁다. 강제 징용 판결은 사법부의 판단이라고 해도 외교 당국으로서 사후에 이를 조정하는 절차는 밟아야 했다. 일본이 지난 1월 한·일 청구권협정에 규정된 분쟁조정 절차에 따라 양국 간 외교 협의를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일본에 한국은 국제법도 지키지 않는 비문명 국가라는 비난의 빌미를 줬다. 또한 일본과 그렇게 각을 세우기로 했다면 충분히 예상되는 일본의 반격에 대비해야 했는데 이조차도 하지 않았다. 최대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일본의 항의에 무시로 일관해 화를 불렀다. 이번 일본의 보복에 대해 2019년판 임진왜란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차고 넘치는 도발 징후에도 불구하고 무방비로 당했다는 점에서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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