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용 건강비누와 샴푸바 등을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다시 시작’ 설립을 준비 중인 유방암 환우회 민들레회 회원들이 지난 3일 경기도 고양 국립암센터에서 시제품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하정옥, 이순우, 안연원, 최경선, 전혜경씨.

국립 암센터·고양시와 함께 암 환자들 사회 복귀 돕기 위해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첫 결실… 암 환자 직장 복귀율 30% 안팎
선진국들, 암 환자관리법 통해 직장 생활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


글 싣는 순서

① 꿈의 방사선치료, 양성자 vs 중입자
② 면역치료, 암과의 새로운 전쟁
③ 희소·난치암 환자에게도 희망을
④ 암, 운명을 갈라놓은 유전자
⑤ 로봇, AI가 바꿔놓는 암 치료
⑥ 암 생존자 200만명 시대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고양 국립암센터 회의실에 중·장년 여성 5명이 모였다. 암센터에서 유방암을 치료 받은 환자들의 자조 모임인 ‘민들레회’ 회원들이다. 오전에 진행된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인가를 위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현장 실사를 받고나서인지 모두의 얼굴에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좋은 평가를 받은 모양이었다.

민들레회 안연원(61) 전 회장이 “암으로 아픔을 함께 한 우리가 힘을 합쳐 암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됐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암 환자용 건강 비누와 샴푸바 등을 만드는 ‘사회적협동조합-다시 시작’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보건복지부 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잘 마무리되면 다음 달부터 제품 생산과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암 생존자들이 만든 국내 1호 사회적 기업이다. 국립암센터가 암 환자들의 사회 복귀와 일자리 창출을 돕기 위해 지난해 8월 고양시와 함께 사회적경제기업 설립 지원에 나선 이후 나온 첫 번째 결실이다.

하정옥(58)씨는 “30대 중반에 유방암 치료를 받은 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 싶어도 자신이 서지 않았고 오라는 곳도 없었다”면서 “다시 일할 기회를 만들어 준 국립암센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건 암 투병에 따른 신체·정신적 고통뿐이 아니었다. 암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대한 아픔이 더 컸다.

20년에 걸려 두 차례(양쪽) 유방암 치료로 고초를 겪었던 안 전 회장은 암 치료를 끝내고 원래 다니던 남편 물류 회사의 임원으로 복귀했지만 6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다. 그는 “일은 잘 못하면서 자리를 꿰차고 앉아 월급만 꼬박꼬박 받는다는 수군거림이 들렸고 직원들 사기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스스로 그만뒀다”고 말했다. 2003년 오른쪽 유방암 수술을 받고 2016년에 뼈와 위로 암이 퍼져 항암치료를 받았던 이순우(66)씨도 “암에 걸리면 사회적으로 냉소하고 기피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여성 5인방은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일하기로 의기투합하면서 다시 희망을 품고 있다. 10년 전 유방암을 겪은 최경선(43)씨는 “원래 하던 미용 쪽 일로 돌아가는 건 벅찰 수 있다. 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에서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역시 10년 전 유방암 치료 후 건강하게 지내 온 전혜경(54)씨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려 한다”며 웃어보였다. 전씨는 남편의 비누회사 덕분에 암 환자용 건강비누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이들의 자활을 돕고 있는 최정미 국립암센터 공공의료사업팀장은 “국내 여건상 암 환자가 자활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국가와 공공기관이 돕고 지역사회가 관심을 가지면 암 환자의 치료 후 삶이 개선되고 자립도 가능하다”면서 “이번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돼 지역 암센터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립암센터가 암 생존자의 건강한 사회 복귀 지원 사업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암 생존자들이 주축이 된 사회적 기업 설립도 그 일환이다. 기존에 일부 제약사나 민간단체들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진행하던 것과 달리 암 정책 실무를 담당한 공공기관이 의지를 갖고 나섬으로써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암 생존율은 70.6%에 달했고 암 유병자는 약 174만명이다. 정규원 국립암센터 대외협력실장은 8일 “2009~2016년 연 11%씩 암 생존자 증가 추세를 반영하면 2018년 200만명을 이미 넘어선 것으로 추산돼 올해는 안정적인 암 생존자 200만명 시대에 접어든 것으로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젊은 암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임상역학센터가 2006~2016년 10만명당 연령군 암발생률을 분석한 결과 20대, 30대, 40대는 매년 각각 4.4%, 3.3%, 1.2%씩 증가 추세였다. 반면 50대, 60대, 70대의 암 발생자 수는 20~40대보다 절대적으로 높지만 연령군 발생률은 매년 각각 1%, -0.2%, -0.2%로 감소 추세였다. 젊은 암 환자는 암 치료 후 직장등 사회 복귀 성향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암 환자들의 직장 복귀율은 30% 안팎이다. 사회보장 정책이 잘 갖춰진 유럽의 경우 암 진단 후 2년 내 직장 복귀율이 60~93%인 것과 비교된다.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조주희 교수는 “국내 암 정책이 조기 검진과 예방, 치료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뒤늦게 정부와 국립암센터가 암 생존자의 사회복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2017년부터 12개 지역 암센터에서 시행 중인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도 호응을 얻고 있다. 조 교수는 “하지만 암 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직장에서의 배려·지원 부재, 암에 대한 환자 본인의 선입견이 여전히 높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와 달리 해외에서는 암 생존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잘 마련돼 있다. 유럽·일본의 경우 암환자관리법을 통해 환자가 직장 생활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 스위스는 기업체가 50%, 정부가 50%를 부담해 환자가 치료 중간뿐 아니라 치료를 마치고 나서도 최대 6개월까지 정상 급여를 받으면서 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일본은 탄력근무시간제를 통해 환자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설정해서 그 시간만큼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영국에서는 의료기관에서 암 환자의 직장 상사에게 해당 직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별도 교육 자료를 보내주기도 한다.

또 일부 국가에서는 암 생존자가 직장 복귀를 할 때 처음부터 풀타임 근무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려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특히 독일은 모든 의료기관에 직업관리 전문 의료진이 상근하면서 환자가 암 진단 시부터 복직할 때까지 전 단계에서 직장 업무와 관련된 가이드를 해준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직장에서 암 생존자에 대한 노사간의 배려, 암 생존자가 검사 및 치료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시간제, 병가제도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암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및 차별을 줄일 수 있는 교육과 홍보도 필요하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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