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둘러싼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 간 논쟁이 치열하지만 진짜 심각한 위기는 놓치고 있다. 악화된 거시경제지표를 둘러싼 토론이 치열하지만 정작 경제의 펀더멘털인 기업 경쟁력은 빠져 있다. 경제의 현장인 기업을 가까이서 보면 지금은 경제 개발을 시작한 이래 최대 위기며 자칫 19세기 말 역사적 대변동을 읽지 못해 나라를 잃었던 비극이 되풀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성층권에서 합산된 숫자에 불과한 지표만으로 논쟁이나 벌이는 정치권은 경제의 실상을 절대 알 수 없다. 반드시 총알이 날아다니며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전장인 기업과 시장에 내려가봐야 한다.

지금 경제의 전쟁터인 시장에서는 게임 규칙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19세기 말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핵심으로 하는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처음 보는 대변동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기업은 가격이나 품질에서 경쟁력을 가지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싸거나 품질 좋은 물건만 만들면 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경계 없이 존재하지 않던 새 고객가치를 계속해서 남보다 먼저 만들어야 하는 무경계 상시 창조적 혁신이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됐다. 게임 규칙의 대전환이 발생한 원인은 최근 발생한 세계화와 시장의 경계 파괴, 기술 혁신의 가속화, 다른 분야들 간 융복합화, 초연결과 초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등이다. 그 결과 새로운 게임의 규칙인 ‘초경쟁’ 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초경쟁 환경은 핵심 역량에 선택과 집중해 기존 경쟁우위를 방어하고 확대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끊임없이 새 경쟁우위를 만들어내야 생존할 수 있는 극도로 긴박한 환경이다. 따라서 코닥, GM, 노키아, 제록스 등의 위기가 보여주듯 최고 기업이라도 새 경쟁우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극도로 위험한 환경이다. 반면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재빨리 체득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신생 기업들이 단숨에 세계 정상으로 급성장하는 정반대 현상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초경쟁은 원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존 경쟁력의 기반이던 역량이나 가치관, 시스템이 오히려 위기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 기업 중 20세기형 경쟁을 가장 잘하는 것은 단연 우리 기업들이다. 어떤 전문가는 끝나가고 있는 포디즘의 마지막 챔피언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들을 대신할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우리 경제의 대안은 전혀 없다. 최근 정권들이 벤처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국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초경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실패한 우리 경제가 생존 위기를 맞은 것이다. 재작년 OECD 경제 전망에서 2030년쯤 되면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0.55%로 회원국들 중 단연 최하위로 추락할 것인데 원인은 패러다임 전환 실패라고 진단했다.

혹자는 IMF 위기 극복을 근거로 우리 경제의 저력을 말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IMF 위기에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지만 경제의 펀더멘털은 강했기 때문이다. 경제의 펀더멘털은 바로 기업 경쟁력이다. 지금은 펀더멘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현 정부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따지고 보면 이명박정부나 박근혜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위기의 진짜 원인은 훨씬 더 심각한 100년 만의 역사적 대전환이다. 게임의 규칙이 바뀔 때는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히 엇갈린다. 현대 산업사회가 시작되던 19세기 후반에 동양 3국 중 일본만 역사적 대전환을 읽고 나라 자체를 뜯어고치는 근본 변혁을 통해 단숨에 강국으로 부상했으나 우리나라와 중국은 봉건왕정의 틀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만 빌리려다 나라를 잃어버렸다. 또다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생존 위기가 닥쳐 왔다. 기업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유일한 해결책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게임으로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혁하는 패러다임 전환밖에 없다. 우리 리더들이 좁고 근시안적인 세계관을 넘어서서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현 상황을 바라봐야 할 때다.

신동엽(연세대 교수·경영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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