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23) 중년여성 해방구 ‘교회여성지도자교육원’ 열어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헌신만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이들에게 꿈과 믿음의 동력 얻게 해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맨 뒷줄)가 1979년 여성지도자교육원 수업 중 ‘인간관계 훈련’ 강의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 50대 여성과 대화를 나누다 가슴 사무칠 얘길 들었다. “선생님, 대학 다닐 땐 꿈이 참 많았는데 결혼하고 애들 키워 대학 보내고 나니 남편은 일에 빠져 밤중에 들어오고 아이들 역시 자기 생활에 시달리고 저는 혼자 종일 집에 앉아 있기만 해요. 이렇게 허송세월해도 될까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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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회에 이런 중년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에게 꿈을 주고 믿음의 동력을 얻게 하는 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로회신학대(장신대)는 월요일엔 공간이 많이 비고 교수님들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교수회의를 거쳐 봄학기에 ‘교회여성지도자교육원’을 개원하기로 결정했다.

영락교회에서 어머니반을 맡던 시절 어머니들은 “성경을 여기저기서 배웠지만 일관성 있게 배우지 못해 개론을 좀 배우고 싶다”는 요청을 하곤 했다. 그래서 커리큘럼에 성경개론을 반드시 넣고 조직신학개론, 기독교교육, 인간발달심리, 상담학 등 2년제 교육과목을 짰다. 그렇게 월요일마다 1시간 30분짜리 강의를 3과목씩 들을 수 있게 했다. 점심시간엔 서로 교제를 나누며 신학대 캠퍼스의 아름다움도 만끽하게 했다. 중년 여성들이 공부도 하고 휴식도 즐기는 프로그램이었다.

개원 첫날부터 60~70여명의 중년 여성들이 몰려왔다. 그다음 학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입학했다. 평신도 지도자반 1·2학년 총 5개 반에 300명 정도가 모였다.

교육원 수업 중에는 따로 날을 잡아 하루 종일 20명씩 그룹으로 교육하는 ‘인간관계 훈련’이란 필수 과목이 있었다. 자신을 발견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워크숍은 늘 흥미진진하게 진행됐다.

어떤 사람은 교육원을 통해 잊고 살았던 학구열이 되살아나 새로운 비전을 품고 신대원에 진학했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해 교수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권사님 한 분은 여학교 동창들을 모아 성경반을 조직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가정에 복음을 전해 신앙 없던 남편들이 교회에 다니게 됐다는 보고도 받았다.

한국교회가 점차 기독교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장신대 기독교교육과도 발전을 거듭했다. 한일신학교에서 고용수 교수를 모셔왔고 오인탁 교수는 독일 튀빙겐대에서 교육철학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임창복 사미자 교수도 각각 미국 피츠버그대와 드류대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다. 모두 내가 기독교교육을 가르친 학생들이었다. 왕마려(Maria Mellrose) 선교사를 대구 계명대에서 모셔오면서 기독교교육연구원도 문을 열었다. 다른 학과 못지않은 교수진이 구성됐고 혼자 해오던 무거운 짐을 맡길 수 있어 해방감도 느꼈다.

이 무렵 박창환 장신대 학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이번에 주 교수가 대학원장으로 좀 수고해 주셔야겠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역할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이렇게 말했다. “학장님, 여자들에겐 장로 안수도 안 주는데 어떻게 제가 대학원장을 하나요. 전 박사학위도 없습니다. 제가 하면 대학 이미지도 떨어질 겁니다.”

진심으로 사양했다. 그러나 박 학장님은 “여성 안수도 안 주니까 주 선생이 해야지요”라고 거듭 요청하셨다. 나는 ‘이분이 미래를 보며 모험을 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들은 즉각 미국 퀸즈칼리지에 서류를 보내 명예박사 학위를 신청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20여년 만에 정교수가 됐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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