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버전’뿐인 성경… ‘어린이 통독’ 되레 역효과 우려

[어린이에겐 너무 어려운 성경] <1> ‘규례·화제·조반…’ 난해한 용어의 장벽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8일 구약의 레위기를 읽고 있다. 이 성경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가 들어가 있지만 개역개정판이어서 어린이들이 읽기엔 어렵다. 국민일보DB

서울의 한 교회에 출석하는 A집사는 지난 3월 초등학교 2학년 딸이 교회학교에서 받아온 ‘사순절 성경통독표’를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성경통독표는 매일 정해진 성경 말씀을 교인들이 함께 읽기 위해 만든 통독 시간표다. 딸이 가져온 통독표의 본문 중 창세기 34장 2절이 눈길을 끌었다.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란 내용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같은 통독표로 성경 읽기를 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A집사는 8일 “평소 성경을 읽다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는 아이가 강간의 뜻을 물어볼 게 분명했다”면서 “아내와 상의한 뒤 아이가 아직 소화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온 가족이 시편을 발췌해 사순절 통독을 대체했다”고 전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경통독과 QT(경건의 시간) 교육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A집사 사례처럼 성경엔 어린이 수준에 맞지 않는 단어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문장도 어렵다. 학생들이 혼자 읽고 이해하기엔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공신력 있는 어린이용 성경은 아직 없다. 많은 교회학교가 개역개정판 성경을 사용한다. 장년과 어린이가 같은 성경을 읽는 셈이다. 개역개정판은 1998년 나온 뒤 수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뿌리는 1911년 선교사들이 번역한 ‘구역 성경전서(Korean Bible)’이다.

일부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어린이 성경’을 제작했지만, 이 성경도 난해하다. 어린이를 위해 별도로 번역한 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존댓말로 바꾸는 등 일부만 수정해 출판했다.

쉽게 쓰여진 성경으로 알려진 새번역도 마찬가지다. 몇몇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실제 새번역 성경으로 QT 교재를 만들었다. 하지만 새번역 성경도 어른들을 위한 성경이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다.

어려운 단어도 성경 읽기를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규례’(일정한 규칙) ‘화제’(제물을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 방법) ‘조반’(아침식사)처럼 평소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초등학생에게는 암호나 마찬가지다.

다음세대인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읽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돼 왔지만 이들을 위한 배려는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어린이들이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만화성경 같은 교육 보조자료도 필요하지만 태부족이다.

박상진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읽히는 건 건강한 신앙교육의 지름길”이라면서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보조자료를 제작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중요한 건 아이들이 성경을 읽은 뒤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이해해 자기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읽다 보면 이해된다는 식의 성경 읽기는 교육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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