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옆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예전에는 가슴에 무언가를 안고 가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게 되면 당연히 아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가까이 가서 봐야만 안고 가는 대상이 아이인지 강아지인지 구분할 수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어느새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집에서 동물을 키우게 됐는지 떠올려보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집에서 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는데, 내가 자신이 없어서 허락하지 못했다. 자신이 다 알아서 키우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손 가는 일은 모두 내 일이 될 것임이 분명했고 끝까지 책임질 용기도 선뜻 나지 않았다. 그래서 키우기 쉬울 것 같아 보였던 거북이를 시작으로 장수풍뎅이, 올챙이 등으로 이어졌다가 급기야는 고양이를 거쳐 강아지까지 키우게 됐다. 반려동물을 키워보니 어떤 점이 좋은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항상 반겨주고 내 옆에 있어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켜면 어김없이 옆으로 온다. 소통을 하는 경험도 신기하다.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의미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야옹”이라는 소리인데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밥은 왜 안 주냐”로 들리기도 하고, 심심하다는 소리로도 들리며, “나 여기 있어요”라고 들리기도 한다.

주변을 보면 가족보다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긴밀한 사람들도 많아졌다.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지인도 있다. 커나가는 아이들의 빈자리와 그 허전함 때문에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도 계시다. 반려동물은 커간다고 해서 멀어지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정을 주는 만큼 내게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고 나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내가 맺고 살아가야 하는 주변 관계를 대체하거나 넘어서게 된다면 내 마음을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가 반려동물을 키울 때의 만족도가 가장 극대화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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