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무능 만천하에 드러낸 ‘해상 노크 귀순’ 은폐 의혹 해소하지 못한 정부 조사 발표
국가 안보 맡길 수 있는지 의문 들게 하는 정경두 장관의 안보관·대북관 우려스러워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았다. 적어도 국민에게는 진실을 말할 것으로 기대했다. 한 점 의혹도 없이 밝히진 않더라도 의혹을 덮으리라고 예상하지는 않았다. 조사할 시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국민 눈높이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북한 목선의 강원 삼척항 ‘해상 노크 귀순’ 사건에 대한 정부의 합동조사결과 발표를 보고 느낀 소감이다.

이번 사건은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육상 노크 귀순’보다 훨씬 엄중하다. ‘육상 노크 귀순’은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북한 병사 한 명이 은밀하게 비무장지대(DMZ) 철책들을 통과해 군 생활관(내무반) 문을 두드리고 귀순 의사를 밝힌 사건이다. ‘해상 노크 귀순’은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길이 10m인 북한 목선이 57시간 동안 우리 해역을 휘젓고 다니다 날이 밝은 아침에 삼척항으로 들어와 귀순한 사건이다. 두 사건은 초기에 허위 보고를 했다가 들통난 것만 비슷할 뿐이다. 2중, 3중의 경계망이 뻥 뚫린 과정을 보면 ‘해상 노크 귀순’은 안보 무능과 불감증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다.

애당초 국방부 감사관을 조사단장으로 했을 때부터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직속 상관인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을 포함한 군 수뇌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상황실 관계자들이 조사 대상이어야 하는데 감사관이 무슨 권한으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 셀프 면죄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발표 내용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합참이 사건 초기 목선 발견 위치를 ‘삼척항 인근’이라고 발표해 불거진 축소·은폐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 해경이 ‘삼척항 방파제’라고 상부에 보고했는데도 조사단은 대북 군사보안상 통상적으로 쓰는 ‘삼척항 인근’으로 표현했다고 강변했다. 유관기관과 협의했다고 하면서 유관기관을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 브리핑에 국가안보실 행정관이 참석한 이유도 석연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질책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청와대가 축소·은폐를 지시했거나 묵인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번 사건의 전 과정을 복기해 보면 이 정권에 국가안보를 맡겨도 되는지 심각한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군 안팎에서는 이 정권과 정경두 국방장관의 안보관·대북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해 왔다. 국가안보를 걱정할 만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국방부는 ‘2018 국방백서’를 발간하면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구체적인 문구를 삭제하고 ‘대한민국 위협세력은 적’이라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남북, 북·미 관계 개선을 감안한 표현이라고 해도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지난 5월 발사한 단거리미사일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해 단거리미사일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별것 아니다”고 했을 뿐이다. 이는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한동안 발사체라고 하면서 분석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 미사일은 남한을 겨냥한 무기임이 분명한데도 정 장관은 “대화로 풀어 가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숨겨진 의미”라고 했다. 정 장관은 지난 3월 천안함 폭침과 연평 해전 등에 대해서도 “불미스러운 남북 간의 충돌”이라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어느 나라 국방장관의 발언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 장관의 대북 설화(舌禍)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정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국방위에서 “6·25전쟁은 김일성과 노동당이 벌인 전쟁 범죄라고 생각하느냐”는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을 받고 머뭇거렸다. 정 장관이 즉답을 하지 않자 백 의원은 “6·25가 전쟁 범죄인가 아닌가”라고 재차 물었다. 정 장관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백 의원이 “북한이 남침을 기획하고 침략한 전쟁이라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정 장관은 “북한이 남침 침략을 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적화통일을 위해 남침한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정 장관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백 의원이 “6·25 당시 북한 검열상과 노동상으로 김일성을 도운 김원봉은 전쟁 범죄의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고 묻자 정 장관은 자료를 뒤적이며 시간을 끌다가 또 지적을 받았다. 정 장관은 “하여튼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적극 동조한 것으로 그렇게”라고 말했다. 정 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의식했는지, 문 대통령의 눈치를 봤는지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정 장관의 발언과 의식 수준을 보면 국방장관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둔 지난 5일 ‘대한민국의 주적’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그의 답변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정 장관의 발언과 크게 대비된다. 윤 후보자가 정 장관보다 국방장관 자리에 맞는 안보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는 평가를 듣는 현실이 씁쓸하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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