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총파업에 참여한 학교비정규직연대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4일 광주 서구 유스퀘어공장 인근 도로에서 ‘정규직 없는 세상’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과정은 이제 절반 정도 진행된 것이어서 수면 위로 오르지 않은 잠재적 갈등 요인이 많다. 당장 1, 2단계 정규직 전환 때 포함됐어야 했는데 제외됐다며 오분류(誤分類) 심사를 낸 사업장이 122곳에 달한다. 고용노동부는 이 가운데 4개 사업장에 대해서만 잘못을 인정해 나머지 사업장 근로자들이 9일 반발하고 나섰다.

처우 개선 로드맵이 없다보니 전환 대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갈라서거나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지원을 역차별로 느끼는 등의 노노(勞勞)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진행된 비정규직노조 총파업이 갈등의 서막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 업체 ‘사람과환경’에서 일하는 한병영(54)씨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 시민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다닐 수 있다”며 12년 동안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청소를 해왔다. 시청 소속 정규직 환경미화원들이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보다 1000만~2000만원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함께 일하던 동료가 작업차에서 떨어져 갈비뼈 3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겪은 뒤 생각이 바뀌었다. 시청 소속 환경미화원들은 다치면 병가를 썼고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았다. 하지만 갈비뼈가 부러진 동료는 회사가 입원을 허락하지 않아 통원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더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며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한씨는 그러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대상 논의에서 제외됐다. 민간위탁 형태 업무라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1단계 대상 직종으로 용역 근로자를 포함시켰다. 반면 민간위탁 사업장은 3단계 직종으로 분류돼 사업장별 자율 판단에 맡겨진 상태로, 정규직 전환 협상이 더딘 상태다.

민간위탁은 지자체 사무 중 일부를 민간 업체(혹은 법인)가 책임지고 수행하는 방식이다. 용역업체는 지자체 직접 지시를 받는다. 거리 청소 사무를 민간위탁으로 맡겼다면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도 원칙적으론 지자체가 청소를 지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민간위탁 사업장 근로자라 하더라도 지자체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어 두 계약 방식은 명확히 구분되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노동현장에서 용역과 민간위탁 개념이 혼재돼 있어 주먹구구식 판단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시·지속적인 업무이고 일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연관된 부분을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라며 “생활폐기물 분야 등은 정규직화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했다.

122개 사업장은 고용노동부에 가이드라인 적용이 잘못됐다며 재심사를 요구했지만 노동부가 오분류를 인정한 곳은 충남 당진시청사 관리와 상하수도 검침 업무 4건에 불과했다. 콜센터 근로자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 댐 점검 정비 등은 추후 논의 과정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오분류를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오분류 인정 기관에 포함되지 않은 사업장 근로자들은 분노했다. 이선규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노동부의 면피용”이라며 “이제 기관별로 여기저기서 오분류 관련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위탁 업체 소속 1562명이 콜센터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의 황계성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은 “정부의 이번 결정은 지지부진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더 지지부진하게 만들 것”이라며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노총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 민간위탁 철폐 투쟁 계획을 조직적으로 논의하고 총역량을 집중해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직무 자체가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배제돼 불만을 터뜨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회 IT전산 업무를 담당하는 위탁업체 ‘서인디지털’ 소속 13명 직원들은 지난 1일부터 파업 중이다.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대상에서 IT전산직을 제외했다. 고도의 전문기술을 요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민간 시장 경쟁 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전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IT전산직 김계상(33)씨는 “국회에서 일하는 IT전산직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분야라면 왜 관련 교육조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정규직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조차 없는 이들의 갈등까지 분출될 경우 노정 갈등은 더 큰 혼란으로 번질 우려가 높다.

갈등은 노노 갈등으로까지 번진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처음에는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해서 정규직지부와 연대해 움직였다”며 “하지만 정부에서 (정규직화에 대한) 방향을 확실히 잡아주지 않으면서 논의가 지연됐고, 우리를 지지해주던 정규직들이 침묵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역차별로 느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 이후 처지를 예측하기 어려운 탓에 비정규직들끼리의 입장도 갈린다. SH공사도 지난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일부 비정규직 근로자가 일반직 편입을 요구한 반면 일부는 별도직군 신설에 동의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냈다. 결국 SH공사는 비정규직 384명을 별도직군으로 고용하는 방식으로 전환을 마쳤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대립한 ‘을’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들이 표출하는 갈등이 정상 사회로 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봤다. 일회성 정책으로 끝낼 일이 아닌 만큼 궁극적으로 노동현장의 차별을 없애는 수준의 세밀한 정책 설계가 계속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노 소장은 “현재는 갈등을 잘 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으로 타협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결국에는 유사 업무를 하면 동일 임금을 줄 수 있는 원칙을 갖고 단계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 형태나 기업 형태에 상관없이 노동자가 하는 일에 대해 적정한 보상을 받는 시스템으로 개선되면 ‘죽기 살기 식’의 투쟁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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