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노랫말이 재미있어 어릴 적부터 자주 흥얼거렸던 대목인데, 사실 세상엔 힘겹게 흥정하지 않아도 깎아주는 장사가 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이다. 만 65세 이상은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 법으로 노인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정한 1981년에는 평균 수명이 66세였다. 당시 4%에 불과했던 노인 인구는 최근 14%를 넘었고, 2040년엔 32.3%에 이른다고 한다. 기준이 그대로라면 20년 후엔 국민 3명 중 1명이 공짜로 지하철을 타게 생겼다. 노인이 늘어날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지하철 운영기관들의 한숨도 커질 것이다.

밑지는 장사라면 한국전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필수공제’로 불리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가 도입된 후 한 달에 전기를 200㎾h 이하로 쓰는 가정에 4000원 정도 요금을 깎아준다. 취약계층과 전기를 아껴 쓰는 가구의 요금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인데, 감사원에 따르면 공제 혜택을 받는 가구 중 사회적 배려계층의 비중은 2%도 안 된다고 한다. 할인을 받는 가구의 98.2%(2017년 기준)가 일반 가구였다.

지난해 혜택을 받았던 958만 가구(총 할인금액 3964억원)는 대부분 1~2인 가구로 추정된다. 1인 가구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다는 통계도 있지만 ‘골드 미스·미스터’로 불리는 경제력 있는 독신 가구도 꽤 있다. 고소득층이 요금을 할인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100억원대 재산에 연봉만 2억원이 넘는 김종갑 한전 사장도 “매달 전기요금 4000원을 보조 받는다”며 필수공제의 불합리성을 알린 바 있다.

문제는 1인 가구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1인 가구는 578만8000가구(지난해 10월 기준)로 1년 전보다 17만4000가구나 많아졌다. 지하철 노인 공짜 손님이 매년 늘어나듯 앞으로 전기요금 할인받는 가구 수도 증가할 게 뻔하다.

전기요금의 왜곡 정도는 사실 가정용보다 산업용이 심하다. 심야·새벽에 산업용 전기를 평균 판매단가의 절반 수준에 공급하는 산업용 경부하요금제가 왜곡의 주범이다. 당초 전력 소비가 적은 심야에 남는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취지였지만 그 혜택이 주로 대기업에만 집중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원가보다 싼 심야 전기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모아뒀다가 전기요금이 비싼 낮에 사용한다. 심야 시간대에 공장을 돌리는 게 아니라 ESS에 전기를 저장한 다음 최대부하 시간에 쓰고 있는 것이다. 밤에 공장을 돌릴 인력도, ESS를 설치할 여력도 없는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을 내고 전기를 사용하는 셈이다.

지난해 국감에선 10대 다소비 기업이 최근 5년 동안 경부하시간대 산업용 전력을 공급 원가보다 싼 값에 소비한 결과 이들 기업이 1조659억원의 혜택을 본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얼마 전 한전 이사회는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7~8월 전기요금을 가구당 1만원가량 깎아주는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소액주주들의 배임죄 경고에도 정부의 선심성 정책을 거부하지 못한 것이다. 한전은 내년 상반기까지 필수공제 등 전반적인 전기요금을 개편하겠다고 하지만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총선이 코 앞인 데다 현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과정에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없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야당은 탈(脫)원전, 신재생 확대로 불어난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전기료 인상을 추진하고 나섰다고 공격할 게 뻔하다.

물론 전기는 요금이 시장이 아닌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에 의해 결정될 정도로 공공성이 강하다. 하지만 석유, 석탄 등 에너지원의 95%를 수입해야 하는 나라가 수많은 가구와 기업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는 게 맞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 성격이라도 있지만 전기요금 할인 혜택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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