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일본 수출 규제와 관련해 입을 닫고 있다. 정부가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것과 대조된다. 기업들은 ‘로키’(Low-key·절제된 기조) 전략으로 원만히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이번 사태가 경제적 이유가 아닌 정치·외교적 문제로 불거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상 기업이 상대 국가를 자극할 언행을 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에서 주요 그룹 총수들은 원론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건넸을 뿐 ‘속내’는 털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업은 일본 시장에 수출을 해야 하고 일본 기업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말과 행동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일정을 이유로 간담회에 불참한 것도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차원의 행보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일본의 소재 수출 규제가 삼성전자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일본 정부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을 방문 중인 이 부회장은 한·일 관계가 더 악화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TV아사히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최근 일본 대형은행 관계자 등과의 협의에서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 문제보다 8월 15일을 앞두고 한국 내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반일시위 등이 확산돼 한·일 관계가 더 악화되는 걸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내 불매운동 확산 등으로 인해 결국 일본 기업도 타격을 입는 악순환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핵심 소재 국산화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은 문제라고 기업들은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건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쟁 업체와 격차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격차를 줄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보다 앞선 경쟁력을 갖춘 소재나 기술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것도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데 모든 걸 다 국산화하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또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모든 나라가 삼성전자처럼 반도체를 만들면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강대강 대결 구도로 인해 일본의 경제 보복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소재 외에 전기차 배터리 등 차세대 성장산업에 필요한 소재 다수가 일본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소재 공급의 다변화 필요성을 느낀 부분이 있지만, 기업은 모든 의사결정을 경제적 논리로 하지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하지는 않는다”면서 “정부가 기업의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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