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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기도의 집’으로 회복될 때 다음세대 살아난다

박호종 목사의 ‘다음세대와 기도의 집을 세우라’ <2>

‘한국 기도의 집’에 모인 기도자들이 9일 서울 서초구 영동프라자쇼핑센터에 위치한 더크로스처치에서 뜨겁게 찬양하고 있다. 더크로스처치 제공

다윗의 장막의 영성과 정체성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기도의 집과 교회가 전 세계 곳곳에서 세워지고 있다. 이는 누군가가 임의로 만들어낸 유행이 아니다. 기도자들이 주님께서 주신 감동에 순종함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마 21:13)라는 선포가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도의 집’(KHOP)이 하나님의 강권하심과 은총 속에서 주야로 멈추지 않는 ‘24/7(24시간, 7일) 기도실’을 운영한 지 10년이 됐다. 이 기간에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주님의 위로와 기적들을 봤다. 그러나 가장 큰 격려와 기쁨은 열방 곳곳에서 기도의 집이라는 정체성이 회복되는 교회를 보는 것이다. 일본 태국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필리핀 영국 미국 등에서 기도의 집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기도의 집을 개척하고자 하는 이들이 KHOP을 방문한다.

기도의 집은 ‘24시간 쉬지 않고 기도와 예배가 드려지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기도의 집을 시작할 감동은 받으나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기도의 집은 24시간을 ‘채우는 것’에 목적이 있지 않다. 궁극적인 부르심이 ‘시간 사수’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근본적 부르심은 예수님의 집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는 데 있다. 그것은 기도의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기도의 회복은 교회의 근본적 DNA이며 문화이자 부르심이다. 시간이나 형태, 형식 이전에 교회의 부르심이며 의무이자 특권인 기도의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다윗의 장막과 기도의 집의 회복은 교회의 본질적인 완성과 연결된다. 교회는 기도라는 본질적인 부르심을 회복하며 예수님의 신부로 단장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에서 기도의 운동이 일어나길 원하신다. 만약 기도의 집 운동이 교회와 상관없는 이슈였다면, 나는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도하는 교회, 기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에는 생명력이 있다. 본질적 회복이 일어난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은 교회가 예수님의 처소,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고 말한다. 교회와 기도의 집은 하나다. 마지막 때 주님이 머무실 처소는 기도의 집, 기도하는 교회일 것이다.

많은 성도와 목회자들이 기도의 집을 방문해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교회를 할까요, 기도의 집을 할까요. 교회를 개척할까요, 기도의 집을 개척할까요.” 나는 “둘 다 하십시오”라고 답한다. 기도의 집 운동이 교회운동이고, 교회의 본질적 회복을 가져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의 집은 교회이고 교회는 기도의 집이다.

교회가 기도의 집으로 회복될 때, 즉 교회의 본질적 요소가 회복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하나님의 나라가 작동한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의 핵심이다. 우리는 죽어서나 가는 천당이 아니라 오늘도 움직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우리 위에 임해야 함을 뜻한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듯, 하나님 나라는 죄의 고통과 아픔을 끊어내며 삶에서 생명력 있게 작동한다. 교회가 기도의 집이 될 때, 실제적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보게 된다. KHOP에서는 누군가가 손을 얹고 기도하는 ‘사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예배하며 머무를 때 귀머거리가 듣고 중병환자가 일어서고 불치병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둘째, 예수님을 향한 갈망과 사랑이 회복되며 건강한 종말적 신앙을 갖게 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라는 외침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와 같은 외침이다. 기도실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집중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서 머무는 시간을 삶과 사역의 우선순위에 둔다. 친밀감은 마지막 때 신부된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능력이다. 기도의 집은 바벨론적(세상적)인 가치와 삶의 태도를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사모하게 하는 종말적 신앙으로 바꾼다.

셋째, 다음세대가 일어나고 살아난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음세대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분리돼 가는 이 세대에게 생명이 흘러 들어가기 위해선 기도와 예배라는 신앙의 본질이 회복돼야 한다. 바벨론이 속삭이는 세상 즐거움에서 뒤돌아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시대의 영성을 돌파하고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을 노래하고 증거하는 세대가 서야 한다. 기도의 집에서 이러한 ‘신부의 세대’ ‘다니엘 세대’가 길러진다. 다니엘 세대란 기도와 예배,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는 세대를 말한다. 이들은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무엘과 다윗처럼 주님의 집에 거하며 말씀과 기도, 기도와 예배로 하늘의 능력과 지혜를 받는다. 교회가 기도의 집으로 일어선다면 다음세대가 주께 나와 예배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다음세대들이 배출될 것이다.

박호종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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