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주선애 (26) 길고도 짧았던 장신대 23년, 눈물의 정년 퇴임식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1989년 영락교회 목회자 사모들과 그룹 상담을 진행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학생들의 데모에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배척을 받아 ‘주 교수 나가라’는 벽보가 붙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됐다. 당시 기도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응답은 이렇다.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왜 학생들을 두려워하느냐. 장로회신학대 학생들은 너의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 아니냐.” 나는 하나님께 약속했다.

“맞습니다. 주님이 섬기러 왔다고 하셨지요. 저도 섬기겠습니다. 내일이라도 나가라면 나가고, 있으라면 종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종들의 종입니다.”

그 후에도 시위는 계속됐지만, 학교는 내게 에덴동산처럼 평안하게 느껴졌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견해 보이고 청소 노동자들이 다시 보였다.

학교의 난방이 변변치 않아 추운 겨울날이면 벌벌 떨며 다녔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저녁을 먹고 나면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더 앉아 있고 싶어졌다. 하지만 교회에 강의를 가야 했다.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는 저 사람과 뭐가 달라서 배불리 먹고 책가방 들고 교회로 가고 있는 것이냐.” 나는 또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저 역시 저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사람입니다. 축복을 받은 제가 불평을 터트렸습니다. 용서하옵소서.”

23년 세월은 길고도 짧았다. 1989년 정년퇴직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퇴임 감사예배는 강의실 몇 개를 합쳐 강당처럼 쓰던 공간에서 진행됐다. 감사의 답사를 해야 할 차례가 왔는데 학교에서 생애를 보내게 하신 하나님 은혜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예배 후 기독교교육과 학생들이 미리 마련해 놓은 깜짝파티가 있었다. 제자들은 예쁘게 만든 화환도 씌워줬다. 그야말로 사랑이 넘치는 행사였다.

퇴임 감사예배 후 ‘내가 더 봉사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중에 목회자와 사모, 여전도사들이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을 때 마땅히 찾아가 의논할 곳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영락교회엔 결혼 법률 청소년 신앙 직업 등의 상담은 하지만 교역자 사모와 여전도사들을 위한 상담은 없었다. 상담 사역을 맡았던 목사님께 “내가 상담 전문가는 아니지만, 신학생들을 장기간 가르친 경험으로 한번 맡아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매주 목요일 상담실에 나갔다. 처음엔 내담자가 별로 없었지만, 날이 갈수록 숫자가 늘었다. 대개는 전화 상담이었다. 의논 한마디 없이 갑작스레 신학을 하고 목회자의 길로 접어든 남편이 못마땅한 사모, 남편이 의처증에 걸려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모 등 심각한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상담을 시작하면 두세 시간 동안 전화통을 붙들고 울며 얘기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 일이 계기가 돼 교역자의 가정 문제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사모 성경반을 조직해 매주 월요일에 모이기로 했다. 7~8명이 와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도록 인간관계 훈련을 곁들였다. 때로는 야외로 나갔다. 사모라는 직분상 폐쇄적이기 쉬운 결점을 보완하고 좀 더 개방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많은 토의와 나눔의 시간을 가지며 성경공부를 했다.

상담을 통해 정말 교회가 살려면 교역자 가정이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 교역자들의 영성을 살리고 정신 건강도 관리할 수 없을까 생각하는 계기도 됐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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