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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내가 교회 주인’ 착각… 전도 등 모든 사역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맡겨

<13> 교회 주인은 누군가

당진동일교회 성도들이 저녁예배 때 옷을 맞춰입고 참여예배를 인도하고 있다. 이수훈 목사는 마을별로 찬양 연극 등으로 능동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기획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시다.(엡 1:23) 성도는 지체로서 분량대로 역사해 그 몸을 자라게 해야 한다.(엡 4:16) 우리는 그 몸의 지체다.(엡 5:30) 그러나 실제 목회현장에선 이 부분이 어려웠다. 교회의 존재 목적을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은 채 교회를 세운다고 열심을 내고 있었다.

가야 할 길을 모른 채 열심을 내는 것이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개척 후 몇 년을 지나 깨달았다. 회중이 늘어가고 교회의 덩치가 불어나고 있을 때 내 안에서는 ‘내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고 교회가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소유하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혀 느끼지 못하고 서서히 빠져들어 간 구덩이였다.

어쨌든 정리가 필요했다. 돌아보면 그만큼 무지한 상황에서 목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관행을 답습하면서 그것이 교회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교회가 교회 되게 한다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익숙해진 예배형태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교회라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예수님이 오늘 당진동일교회에 오신다면 무엇을 하실까. 책망하실 것만 같았다.

예수님의 몸이라면 지체는 몸에 붙어서 몸이 원하는 대로 같이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엡 1:22) 머리는 온몸을 움직이는 기능을 한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존재 목적이 선명해졌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 1:38)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직접 일러주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 이름 자체가 구원자이시다. 그 구원 사역을 이루신 곳이 십자가이고 그 후 교회를 통해 구원 사역을 계속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까지 하셨다.(마 28:19~20, 행 1:8) 이를 모르는 성도는 없을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여기에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힘을 다해 교회를 세운다고 열심을 내면서 그 목적이 희미해지는 방향으로 달려간 것이다. 목적이 희미해진 열심만 남아있었다.

머리가 되신 예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과는 동떨어져, 정확하게 해 드리지 못하면서 비대해져 가는 교회의 운전석에 내가 앉아 있었다. 교회가 커지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성도가 늘어가는 것도 목적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선명하게 이뤄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데 그걸 놓쳐가고 있었다.

교회의 목적을 깨닫고 평신도 사역교회로 체질을 바꾸기로 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일꾼, 평신도 사역 중심으로 교회 체질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신학교를 나온 분들도 사역이 쉽지 않은데 과연 될 법한 일일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숱하게 경험했다.

우선 당회는 행정만 맡게 하고 목회의 모든 사역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하게 했다. 심방, 돌봄, 전도, 각종 행사 등 제반 사역들을 다 넘겼다. 주변에선 과연 할 수나 있겠느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예수님의 지체로서 자리 잡는 가장 적합한 일이라 생각했다. 평신도 리더를 세우기 위해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마주 앉아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론과 목양론을 세워갔다.

그 과정은 단순히 교육이 아니었다. 상담과 치유, 경청과 공감, 성령체험과 기도, 섬김과 사랑 등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역을 강의하고 토론했다. 배운 다음 현장의 사례를 발표하고 그것을 다시 강평하는 식으로 했다. 점심을 같이하고 오후에는 결석 성도들을 챙기고 1주 동안 돌아볼 심방계획도 세우게 했다. 그렇게 월요일은 완전히 지도자만 세우는 날로 온 에너지를 투입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한번 맡긴 사역은 끝까지 믿고 지원했다. 지금은 그때 세워진 평신도 지도자 1명이 700여 가구를 맡는다. 이분들이야말로 교회의 기둥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예우나 배려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 리더는 영적으로 점점 자라서 이제는 어떤 일이든 목회자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서 감당하는 수준까지 서게 됐다. 이렇게 세워진 평신도와 이들이 펼치는 사역은 교회에 안정감을 줬다. 사역의 지속성 면에서 이보다 좋은 동역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힘들여 전도해도 교회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멀어져가는 이들이 보였다. ‘어떻게 하면 새가족을 잘 정착시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짜낸 결론이 참여하는 예배였다. 성도들이 직접 예배에 참여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구상했다. 평신도가 주체가 돼 섬기는 예배를 주일 오후 7시, 수요예배, 금요 철야 기도회에 적용했다.

자리에 앉아 설교만 듣고 가던 성도들이 예배에 직접 참여하도록 월 1회 교구가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드렸다. 준비과정을 통해 교제하면서 한마음이 되는 성도들을 바라보는 기쁨은 무척 컸다. 성도들은 교회가 내 집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자세는 헌신과 전도로 이어졌고 봉사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됐다. 그 결과 목사만큼이나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성도들로 교회가 채워졌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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