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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주선애 (27) 소외된 여교역자 노후대책 위해 안식관 짓기로

월남해 혈혈단신 외롭게 생을 마친 사연에 마음 아파 결의… 뜻 공감한 많은 분들 도움으로 건립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여교역자연합회복지재단 안식관 본관 전경.

여교역자 ‘노후대책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의했다. 평생 고생하면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여전도사들에게 나는 빚을 지고 사는 것 같았다. 특히 북한에서 넘어온 내 또래 여전도사가 있었는데 병이 나서 교회 일을 못 하게 됐다. 갈 곳을 찾다가 기도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후 몸이 심하게 부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병문안 갈 시간을 내지 못하고 며칠을 미루던 사이 그가 하나님 나라로 떠났다. 부모도 자식도 없을 텐데 혼자 앓다가 생을 마친 그 전도사를 생각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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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면에 있는 임야 9000㎡(약 3000평)이면 안식관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땅만 있으면 건축은 어떻게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헌납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러 번 답사를 해보니 진입로에 음성 나환자촌이 형성돼 있었다. 아무래도 안식관으론 적합지 않으니 급히 땅을 매각해 그 돈을 바치기로 했다.

나 외에도 두 사람이 땅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평소 여교역자들의 현실에 나와 같은 시선으로 봐주던 홍순춘 전도사와 박정득 권사였다. 홍 전도사는 자기가 갖고 있던 청주시 땅 5400㎡(약 1800평)를 기증했고 박 권사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임야와 전답 18만㎡(약 6만평)를 기증했다.

성결교 신학교를 졸업한 박 권사는 장사하느라 하나님 일을 못 한 것이 죄송해 ‘나중에라도 꼭 기도원을 운영해야겠다’ 싶은 마음으로 땅을 찾다가 용문산 관광지에 있는 목장을 매입했었다. 그러다 여전도사들의 노후를 위해 쓰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기꺼이 무상으로 헌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박 권사가 기증한 땅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전답이어서 그곳으로부터 약 10㎞ 떨어진 곳에 새로 땅을 샀다. 1982년 4월 드디어 법인 설립 인가가 나왔다. 그때부터 30여년 꿈꿔오던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져 본격적인 건축이 시작됐다.

건축이 시작되자 뜻에 공감해준 분들이 목소리를 내주셨다. 한경직(영락교회) 목사님은 “안식관 건립에 협력하십시다”하며 격려하셨고, 이종성 장로회신학대 학장님은 “나머지 절반의 도움이 됩시다” 하며 돕자고 나서주셨다. 나는 “교회의 소외자를 도웁시다”라고 외치며 각각 호소문을 냈다.

처음 안식관 준공예배를 드린 건 1986년 4월 28일이었다. 그날 한경직 목사님이 오셔서 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교회를 부흥, 성장시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수고한 사람들이 여교역자들인데 그동안 한국교회는 대접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축복하셔서 여교역자들과 여러 성도가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줘서 안식관 준공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에 남는다. “많은 사람이 여전도사들이 스스로 안식관을 짓겠다고 했을 때 속으로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늙은 사라가 아기를 갖게 하실 때 나타나셨던 것처럼 여교역자 안식과 건축에도 나타나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도 때때로 목사님들이 안식관을 방문해서는 “어느 나라에 이 같은 규모의 여교역자 안식관이 있겠느냐”고 감탄한다. 이제는 공동체로 자리를 잡았다. 영성훈련원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영적 성장에 힘쓸 뿐 아니라 교회나 단체가 영성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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