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는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거북할 때 쓰는 표현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방미 후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금은 미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중재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데 대해 “표현을 좀 더 잘할 수도 있겠는데, 그런 표현은 지금 타이밍상 좀 거시기하다”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는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의 비공개 면담에서 “지금은 미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고 윤 위원장이 전했다. 아시아를 방문 중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도 일본 NHK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일 갈등상황에 대해) 중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중재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풀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중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첫째, 한·미·일 공조를 위해서다. 북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3국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미 국무부는 “한·미·일 공조를 계속 유지하고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한·일 관계는 일제 강점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한·미·일 공조는 불가능하다.

둘째, 미국이 중재를 거부하면 일본의 경제 보복이 미국의 동의나 묵인하에 이뤄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매사에 미국 눈치를 보는 일본의 특성상 이런 일을 저지르면서 미리 미국에 얘기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하는데, 미국은 한국의 군기를 잡기 위해 구경만 하며 즐기는 시누이가 된다. 반미 감정이 고조될 우려가 있다.

셋째, 반일 감정이 높아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 노동신문이나 우리민족끼리 등이 일본의 우리에 대한 경제 보복을 연일 강하게 비난하는 것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느끼거나 심지어 고맙게 여기는 국민들이 많다. 남북이 한마음으로 일본을 규탄하는 형국이다. 해리스 대사는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시점에 대해 “미국 기업이나 안보에 영향을 줄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다. 미국은 한·미·일 공조는커녕 남·북 vs 미·일 대립 구도가 형성되길 원하는가.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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