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11년 만에 다시 윔블던 정상 문턱에서 마주쳤다. 3시간2분 동안 펼쳐진 40번째 클래식 매치, 승리의 여신은 ‘황제’ 로저 페더러(37·3위)의 손을 들어줬다. 윔블던 잔디는 ‘흙신’ 라파엘 나달(33·2위)의 고향 클레이 코트(바닥이 흙인 코트)가 아니었으니까.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24(나달) 대 16이 됐다.

결승은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2) 대 페더러, 4강 대진표를 본 대다수는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또코비치’가 먼저 올라갈 테고, ‘또더러 대 또달’ 승자와 맞붙겠구나. 조코비치는 16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 페더러는 21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이자 8번째 윔블던 정상 도전이다. 그렇게 14일 세계 최고 테니스대회 윔블던 결승은 또 한 번 ‘고인물’ 대잔치가 됐다.

2004년 2월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한 페더러는 237주 연속 1위 수성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명실공히 테니스 황제다. 프로선수로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최정상급 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페더러를 클레이코트에서 14승 2패로 압도하며 상대전적에서도 우위를 점해 온 나달은 ‘라이벌’ 그 자체였다. 더불어 2010년대 들어 대기만성형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온 조코비치까지, 역대 1~3위를 다투는 살아 있는 전설들이 여전히 십 수 년째 현역으로 뛰고 있다. 이들 ‘페·나·조’가 차지한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우승 횟수만 53회(페 20, 나 18, 조 15)다. 이번 윔블던으로 1회를 더했으니 우리는 진정 ‘테니스 신’들과 동시대를 사는 축복을 누리고 있다.

페더러의 우아한 한손 백핸드, 코트를 집어삼키는 나달의 폭발적 대시, 조코비치의 무결점 스트로크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냉정히 말해 이들의 최전성기는 지났다. 그럼에도 ‘빅3’를 넘어설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 몇 년 전까지 ‘빅4’를 노크했던 앤디 머레이(32) 정도를 제외하면 위협은 없었다. 신체적으로 정점인 1990년대생 젊은 세대는 그랜드슬램에서 빅3에게 눌려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신진 세력의 대두와 치열한 대관식을 기대했던 테니스 팬들은 길어지는 ‘신들의 황혼’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다.

같은 날, 한국에서도 비슷한 감상에 젖어들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당 대표 복귀였다. 심 대표는 13일 마감된 전국동시당직선거에서 83.53%의 득표율로 양경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선거기간 당내에서조차 ‘어대심(어차피 대표는 심상정)’이란 말이 나왔던 당의 간판이 2017년 이후 2년 만에 다시 당 대표로 돌아왔다. 심 대표는 이튿날 첫 공식일정으로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위치한 고 노회찬 전 대표 묘소를 참배했다.

1990년대부터 3번 연속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후 진보정당을 이끌 인재로는 ‘노심조(노회찬·심상정·조승수)’가 거론됐었다. 실제 노 전 대표와 심 대표는 각종 선거와 방송토론 등을 통해 대중적 지지를 제고하며 진보정당의 볼모지인 여의도에서 정당득표율을 7.2%(20대 총선)까지 끌어올린 ‘투톱’으로 맹활약했다. 지난해 노 전 대표가 유명을 달리한 이후 많은 이들은 심 대표가 다시 당의 키를 잡는 상황을 예견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돼 존재감이 미미해진 현 정국이 전국적 인지도와 탄탄한 지역구 관리에 기반한 심 대표를 다시 진보정당의 얼굴로 소환했다.

심 대표 외 극소수를 제외하면 정당득표율과 비례대표로 명맥을 유지해 온 정의당은 내년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편과 더불어 의미 있는 의석 획득으로 비례정당의 한계 극복을 노린다. 하지만 십 수 년간 ‘노심’ 이후 당을 대표할 만한 주자들을 키워내지 못한 점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 2기 천호선 전 대표, 직전 4기 대표였던 이정미 의원 등이 당의 키를 잡았을 때도 대표로서의 영향력이 심 대표 개인 영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을 정도다.

진보정당이 ‘집권정당’을 노리기 위해선 심 대표가 버텨주는 동안 새로운 스타를 배출해야만 한다 후생가외(後生可畏·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의 간절함은 테니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정건희 산업부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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