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대꾸라도 하는 날엔 온 집안에 칼자국이 났어요. 전 남편은 지금도 종종 술 취해 집을 찾아와선 한참을 소리치고 행패를 부립니다. 하지만 그나마 저는 잘된 케이스예요.” 이주여성 A씨(54)는 14일 자신을 폭력가정에서 탈출한 ‘성공 사례’라고 자조했다. “매일 술을 마시던 남편은 ‘다 끝내자’는 말을 하며 베개 밑에 칼을 두고 잤다. 그런 날이면 뜬눈으로 밤이 새도록 아이를 부둥켜안고 있어야 했다”며 결혼생활 마지막을 회상한 뒤 뱉은 쓴웃음이다. 그의 자조는 자신이 최근 베트남 이주여성처럼 무차별 폭행을 당하지 않았고, 비자 문제로 본국에 되돌아가야 하는 처지를 벗어났다는 의미일 뿐이다.

모국에서 지인의 소개로 만나 2년간 연애했던 남편은 ‘착한 남자’였다. 한국어를 잘 몰랐지만 남편만 믿고 한국에 와 결혼했다. 결혼의 단꿈은 지적장애 아들이 태어나면서 순식간에 깨졌다.

“어떻게든 결혼생활을 유지해보려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친절하게 대하면 ‘왜 웃냐’고, 가만히 있으면 ‘왜 무시하냐’고 화를 냈어요. ‘술 좀 줄이라’고 한 마디 하는 날엔 집안 가구나 문에 칼자국이 났고, 친정에 전화하는 날엔 전선이 모두 잘려나갔습니다. 휘발유통을 들고 앉아 라이터를 켜고 위협받기까지 했어요.”

A씨는 아이와 함께 시댁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시어머니는 나무랐다. 갈 곳 없던 그녀는 ‘아이를 생각하라’는 시댁의 권유에 다시 3년을 더 버텨냈다. “당시 스트레스가 너무나 심해 두피가 허물처럼 벗겨져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고 했다. A씨는 아이 곁에서까지 남편이 칼을 두기 시작하던 해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장애아들 출산에 원망하던 남편은 정작 이혼 절차가 시작되자 “아들은 못 준다”고 버텼다. 헤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해 위자료 청구나 배우자 귀책 인정 여부를 다투지도 못했다.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협의이혼에 동의했다. A씨는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었지만 남편이 이혼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친권은 남편이 가져갔고 양육권만 받았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26개 이주여성보호쉼터에 입소한 516명을 분석했더니 남편에게 다시 돌아간 경우가 246명에 달했다. 이혼을 선택하는 순간 친권을 박탈당하거나 비자 문제로 모국으로 쫓겨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불행이 반복될 것을 알면서도 현실 장벽에 부닥쳐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절반가량 되는 셈이다. 쉼터 입소 후 한국을 떠나거나 국내에서 잠적하는 경우 등 ‘기타’로 분류된 경우는 65명이었다. A씨의 탈출기가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폭력가정을 탈출해 지내는 이주여성들은 침묵하기를 원했다. 국민일보는 여러 단체를 수소문해 피해 여성 접촉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다. 인터뷰에서도 2차 피해를 우려하며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돈을 목적으로 결혼한 것 아니냐는 오해의 시선에 체념한 듯한 표정도 읽혔다. A씨 역시 “모국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비난이 두렵다”며 “출신 국가를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한 이주여성은 “이런 사건은 늘 발생해 왔다.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더 급하다”고 했다. 정착지만 한국일 뿐 이방인 대우를 받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 가득했다.

그들은 왜 침묵할까. 한 이주여성단체가 “그나마 운이 좋았던 사례”라며 소개해준 또 다른 국적의 B씨(25)의 사연은 이들 속내를 간접적으로나마 설명한다.

B씨는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스무 살 많은 남편과 결혼했고, 이듬해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인공수정 시술을 받았다. “‘병원에 가자’는 시어머니 말에 따라 나선 곳이 산부인과였다. 시어머니는 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만 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온 날에는 온몸에 열이 나고 힘이 빠졌다. 하지만 고된 집안일은 끝날 줄 몰랐다. B씨는 “일을 못하겠다고 하자 시어머니가 짐을 집 밖으로 던져놓고 쫓아냈다”고 했다. 한겨울인 2월이었다. 몸이 버텨내지 못해 그녀는 아이를 유산했다.

임신에 실패한 B씨는 집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됐다. 유산 수술을 받을 때조차 남편과 시어머니는 곁을 지키지 않았다. 퇴원한 날 곧바로 청소 등 집안일을 시켰고, 몸이 아프다고 하자 또 집 밖으로 쫓아냈다. 남편은 시어머니 집으로 들어갔고, 시어머니는 집 열쇠를 바꾼 채 TV와 냉장고를 가져갔고 도시가스 설비를 철거해버렸다.

유산 이후 남편과 시어머니는 몰래 이혼 절차를 진행했다. 당시 남편 측은 B씨가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은 카드 영수증을 허위로 제출해 “낭비가 심한 아내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영문도 모르던 B씨는 그제야 민간 이주여성지원단체에 도움을 요청해 변호사를 선임했다. B씨는 “‘귀책사유’가 뭔지 몰라 내가 본 것들은 집 앞에 붙은 종이까지 전부 찍어서 보냈다”고 했다. 그녀가 찍은 메모엔 운 좋게도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애를 낳게 한 다음에 돈 한 푼 없이 내쫓는 방법을 찾아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겼다. 결국 남편의 귀책사유가 인정돼 이혼이 성립됐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서 벗어났지만 B씨는 웃지 못했다. 연장 비자로는 언제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위자료도 제대로 받지 못해 남편과의 소송 과정에서 생긴 변호사 비용과 당장 머물 집을 마련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B씨는 120만원 월급을 받는 공장에 취직해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를 볼모로 한 남편의 협박 역시 폭력가정 탈출의 관문이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여성은 이혼 후 친권자는 물론 양육자로도 지정되지 않아 아이를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친권이 없는 이주여성은 아이에 대한 모든 행정 절차에서 남편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고 말했다.

A씨도 협의이혼을 하면서 친권은 남편이 갖게 됐다. A씨는 “이혼 후 남편 볼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때문에 숨어 지낼 수 없었다”고 했다. 아이 명의의 통장을 만들고 출국을 하는 모든 과정은 친권자인 남편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

또 다른 이주여성단체로부터 전달받은 C씨의 상황도 위태로웠다. C씨는 2년 반 결혼생활 끝에 남편의 성폭력과 외도를 견디지 못해 이혼했다. 당시 그녀는 협의이혼이 뭔지도 몰랐고, 남편과 헤어지는 일만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 과정에서 형제 명의로 재산을 돌려놨고, 그녀는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오게 됐다. C씨는 당장 비자 문제도 해결되지 않아 빈털터리로 고국에 돌아가야 하는 위기에 놓여 있다.

2차 피해에 시달리는 이주여성도 많다. 경기도 오산의 한 이주여성 보호센터 관계자는 “‘이혼하면 너희 나라까지 찾아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자녀나 모국에 있는 가족에게까지 남편이 해코지할까 두려워 이혼 결심까지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결혼이주민이 체류와 동시에 이혼을 원할 경우 ‘미등록 체류자’가 된다. 이들은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인정받아 결혼 이민자 비자인 F6 비자를 계속 갱신하거나 귀화시험을 통과해야만 한국에 머물 수 있다. 김은미 다울빛 이주여성연합회장은 “이주여성들은 자신의 체류 자격이 남편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가정폭력 가정의 경우에는 원가정으로 돌아가도 문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가정에 대한 사후 관리가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기준 F6 비자를 받은 사람 중 미등록 체류자는 1433명이었다.

지원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홀로서기가 어려운 이주여성들은 쉼터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이들과 자조 모임을 갖고 있었다. 국민일보가 만난 한 자조모임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준비부터 주변에서 알려주지 않는 한국 생활의 다양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공간이었다. 이 모임에서도 남편과의 불화나 가정폭력 피해는 공유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했다.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이주여성에 대한 추적 조사도 쉽지 않다. 여가부 관계자는 “추적 관찰을 하려 해도 2차 피해를 우려해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 피해가 커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입국 전 한국 결혼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만 심어줄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어디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이혼하면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지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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