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은 곡소리가 난 지 한참 됐지만 정부가 ‘경제가 어렵다, 심각하다’는 걸 인정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론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난달 7일 기자간담회부터다. 윤 전 수석은 이날 “우리 경제의 성장세에 하방 위험이 커졌다. 앞으로 대외 여건에 따른 하방 위험이 장기화될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 전까지 청와대는 경제 실패론을 가짜뉴스 취급했다.

정부의 경제 운용을 비판해 온 전문가들이 가장 분노하는 대상은 정작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지난 1월 초 방송 대담 프로에 출연해 “경제위기를 조장하는 건 오염된 보도 때문”이라며 “경제 위기론은 한국 보수 기득권층의 이념·이익동맹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은데 재벌과 보수정당, 보수언론이 정부 개혁정책을 좌초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조직적으로 정부를 공격한다는 식이다. 경제정책 비판자들에게 친재벌·보수세력 딱지를 붙여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유 이사장이 요즘 딱지를 붙이는 대상은 ‘친일파’다. 그는 최근 방송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이런 판국에 (일본 총리인) 아베를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하는 분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보셔야 한다. 도쿄로 이사를 가시든가”라고 했다. 충분히 예견됐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손 놓고 있었던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아베 편드는 이(친일파)’로 낙인 찍은 것이다. 유 이사장은 일본이 보복하는 이유에 한국 진보 정권에 타격을 입혀 선거에서 지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며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을 국내 정치에 바로 적용시켰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대한 불만과 이후 정부의 무대응이 일본의 보복을 불렀다는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빨갱이’ 낙인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친문 세력의 입 역할을 하는 유 이사장은 친재벌, 친일파 딱지를 붙여 국민을 편가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문 대통령이 보수 세력의 딱지 붙이기에 진정 분노했다면 정치적 반대파 낙인찍기에 열심인 최측근의 행보에도 눈 감아선 안 될 것이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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