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지향하는 선을 이루는데 필요한 성품을 함양하려는 게
법을 지켜야하는 진정한 이유이자 법의 존재 목적
이것이 심화되는 권리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법은 왜 지키는가?’ 이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보통 ‘법이기 때문에’ 또는 ‘처벌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즉답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공동체의 정의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답변하기도 하며, 아주 드물게는 법이 지향하는 선(善)을 이루기 위한 성품을 함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법은 왜 지키는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신이 보낸 등에(쇠파리)’라고 하면서 당시 아테네의 기성세대들을 성가시게 하고, 다음 세대의 주역인 젊은이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헌신했다. 그러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민회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외국으로의 망명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등에로서의 자신의 삶이 옳고, 그로 인해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무책임하게 말만 내뱉어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재판결과는 360대 140 소크라테스의 패배였다. 플라톤을 비롯한 제자들은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소크라테스에게 탈옥해 외국으로 망명할 것을 권유했고, 아테네 지도자들도 소동을 방지하기 위해 은근히 망명을 기다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거부하고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 재판에 응한다는 것은 판결절차의 위험부담도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위험부담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결과가 불리하게 나왔다고 탈옥한다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비열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었다. 사실 이 말도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 외에 진짜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70세의 노인인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기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러한 성품은 하루아침에 닦여지는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4주덕(主德)인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평생을 통해 연마해 왔다. 그러한 연마가 죽음에 이르러서 빛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통해 우리는 왜 법을 지키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법이 지향하는 선을 이루는 데 필요한 성품을 함양하기 위해 법을 지킨다는 것이다.

예수가 유대의 지도층인 바리새인들 및 제사장들에게 깨우쳐 주고자 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통해 율법(토라)을 주신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율법이 지향하는 선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성품을 함양’해야 한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백성인 천국의 시민권자라면 당연히 그러한 성품을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대 지도층 인사들은 율법을 그 자체로 엄격하게 지키는 것에 치중했고, 이는 율법이 목적이 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예수는 그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간음죄’를 보자. 당시 유대사회에서 간음의 의미는 ‘남녀가 성관계를 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하지 않으면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수는 남자가 여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어도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즉시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간음 금지 규정의 의미대로 행했다고 율법을 지킨 것이 되지 않고, 그 규정이 지향하는 선(善)인 여성 존중과 부부간의 신의를 지켜야 진정으로 율법을 지킨 것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선이 있다. 그것은 음욕을 품고 여성을 바라보지 않으려면 마음의 변화를 통해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구약성경의 ‘선악과(善惡果) 명령’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냥 나무 한 그루를 지적하시면서 ‘이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특정하신 것이다. 이 명령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인 선악과 명령을 진정으로 지키는 길은 단순히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성품이 탐욕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 담고 있을 수 있도록 ‘내면적인 선’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익이나 정의·평화라는 ‘외면적인 선들’을 이루기 위해서도 법을 지켜야 하지만, 그것을 넘어 법을 지킴으로써 도덕적 성품을 함양하겠다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법의 존재 목적이다. 또 이는 ‘심화되는 권리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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