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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화요모임’ 단원들 통해 3대 목표 구체화

<11> 화요모임 발전과 그룹 전도활동

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오른쪽 세 번째)가 밀알선교단원들과 함께 1980년 10월 열린 일일찻집에 참석한 모습.

단원의 활동이 밀알 사역의 요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단원을 확보하고 훈련, 교육하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그 일은 주로 화요모임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화요모임을, 가능하면 알차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배나 성경공부, 특수교육과 모든 순서가 단원들에게 유익이 되고 만족할 수 있게 하려고 부단히 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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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장소는 2월엔 신용산교회에서 모이다가 7월부터는 교통이 더 좋은 서소문의 평안교회 교육관으로 옮겼다. 그러나 평안교회는 계단 때문에 5층까지 오르내리기가 불편한 데다 난방이 되지 않아 11월부터는 사당동 밀알 사무실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그 뒤부터는 계속 밀알 사무실에서 화요모임이 이뤄졌다.

밀알의 힘은 바로 이 화요모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서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논의하고 사명을 다지며 비전을 공유했다. 동역자들과 교제하며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바른 사역자로 자라갈 힘을 공급받았다. 그래서 그 뒤로도 나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밀알을 만들 때마다, 그리고 사역자를 세울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게 일주일에 꼭 한 번씩 모임 활동을 최대한 활성화하라는 말이었다. 그 모임이 잘 되면 여타의 활동과 사역도 잘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화요모임을 통해 훈련되고 다듬어진 단원들을 활용해 3대 목표를 구체화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전도 활동이었다. 전도 활동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이뤄졌는데, 첫째는 기회가 되는 대로 단원들이 장애인을 개인적으로 접촉해 복음을 전하는 형식이었다. 사무실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단원들이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둘째는 서신이나 전화로 복음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은 장애인의 사회적 진출이나 복지시설이 더욱 열악했기 때문에 대부분 장애인이 집 안에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상담기관이 거의 없어서 밀알이 몇 번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자 전국에서 많은 장애인이 편지나 전화로 상담을 요청해 왔다. 신앙 교육 직업 가정 문제는 물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일 등 다양한 종류의 상담이 접수됐다. 상담 끝에는 언제나 복음을 소개하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세 번째는 토요일 그룹 전도 활동이었다. 집단으로 거주하는 장애인 시설을 주 1회 이상 방문해 전도하는 형식이었다. 한 전도팀을 5~10명의 실행 단원으로 구성하고 각 팀에는 리더, 말씀 담당자, 상담 담당자와 봉사자 등 필요한 일에 따라 담당자를 뒀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강당이나 넓은 공간에 모이게 해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와 상담을 진행했다. 그 후엔 청소 빨래 심부름을 비롯해 책 읽어주기, 성가 가르치기, 함께 놀기 등 다양한 순서들이 이어졌다. 다과 등 음식도 함께 준비해 갔다.

밀알이 그룹 전도를 위해 처음 개척한 장애인 시설은 서울 천호동 맹인재활센터(지금은 없어짐)였다. 안과 의사이자 한글 타자기 발명으로 유명한 공병우 박사님이 사재를 들여 설립한 중도실명자 재활기관이었는데 당시 30명 정도의 교육생이 있었다. 1980년 3월 1일 내가 직접 9명의 단원을 인솔해 갔다.

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뒷줄 가운데)가 1981년 여수밀알수련회 당시 여수지부 단원들과 함께 애양원 시각장애인들의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있다.

그 다음 개척지는 상계동 맹인대린원이었다. 중도 실명된 시각장애인이 3년 과정으로 재활교육을 받는 시설이었는데 150여명의 원생들이 기숙사에 함께 살고 있었다. 그곳 전도팀의 초대 리더는 당시 총신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성관 형제였고 구자영 전복자 안기숙 등 여러 단원이 그 팀에서 함께 참여하여 사역했다.

우리는 농아인을 위한 그룹 전도 활동도 펼쳤다. 농아인 전도를 시작하기 위해 6월 화요모임부터는 농아인 전도팀 단원들에게 수화를 가르쳤다. 첫 활동 장소로 영락 농아인교회 예배실을 빌려 토요일마다 농아 아동과 농아 중·고등 학생들을 모아서 성경공부를 하고 성가를 가르쳤다.

네 번째로 개척한 그룹 전도지는 다니엘 정신지체학교였다. 정신지체인은 가장 힘든 전도 대상이었다. 9월부터 시작했는데 초대 리더는 단국대 특수교육과를 졸업하고 명수정신지체학교 교사로 있던 김기일 자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강원호 형제가 리더가 되어 오랫동안 섬겼다.

이렇게 해서 밀알이 창립되고 1주년을 맞기 전까지 매주 토요일에 나가는 전도 활동지는 모두 네 곳이 됐다. 초기 밀알에서 주력 사역으로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 토요전도활동이었기 때문에 그 뒤에도 계속 이 활동은 발전됐으며 어떤 사업보다 가장 활발하게 전개됐다.

이듬해에도 개척지는 계속 늘어났다. 당시 서울 양동은 유명한 사창가이기도 했지만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판잣집 같은 방을 얻어 기거하고 있었는데 주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가르치면서 우리가 붙인 이름이 양동맹인회였다.

서울맹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토요일마다 근처에 있는 옥인교회에 모이게 해 성경공부를 가르치며 책을 읽어주는 등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정신지체 아동들을 살뜰하게 챙기며 전도했던 인천은광학교, 여수지부 단원들의 열심이 돋보였던 애양원 한센병 환우 전도, 여수 시내 시각장애인 전도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곳의 전도 활동에 참여했던 밀알 단원들은 학생도 많았지만 직장인, 주부, 고령의 집사 권사님들도 있었다. 나는 토요일마다 각 전도 활동 현장을 순회 방문하면서 단원들을 격려하고 지원했다.

이재서 박사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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