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요람’ 명동교회, 중 당국 방치로 붕괴 위기

기장·한신대 대책 마련 착수


1909년 중국 북간도 지역에 설립된 최초의 한인 교회이자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었으며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인 김약연(1868~1942·사진) 목사가 시무한 명동교회가 건물 붕괴 우려로 폐쇄 조처된 것을 확인했다. 문재린 문익환 문동환 삼부자(父子) 목사를 배출한 명동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와 한신대의 본향과도 같은 곳이다. 기장 교단은 즉각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의 윤동주 생가 입구에 있는 명동교회 전경. 건물 밖 십자가는 철거된 지 오래다.

국민일보는 지난 4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에 있는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 입구의 명동교회를 찾았다. 1916년 당시 ‘간도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독립운동가 김 목사가 8칸짜리 기와집을 올려 건축한 예배당이다. 100년 넘은 교회 건물 앞에 있던 십자가는 철거돼 사라졌고,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지붕엔 잡초가 자라고 있었고 창살은 배불뚝이처럼 휘어져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창문으로 들여다본 실내엔 텅 빈 곳에 십자가가 새겨진 강대상만이 남아 이곳이 교회임을 증명했다.

창살이 둥글게 휘어져 붕괴 위험을 드러낸 예배당 모습.

현지 안내원은 “장마철 비가 새고 있고 무너질까 무서워 우리도 교회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진입을 막았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관계자도 “그동안 윤동주 생가와 명동교회 관리를 명동촌 조선족 주민들이 하다가 공산당 측이 한족들로 안내원을 바꾼 이후부터 교회는 사실상 방치돼 왔다”면서 “건물 붕괴 우려로 지금은 교회당을 비우고 유물을 ‘윤동주생평전시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2012년부터 거액의 예산을 들여 윤동주 시인의 생가 주변을 확장해 ‘명동윤동주생가’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일제에 저항한 시인으로서의 윤동주를 기억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명동교회와 다른 교회 공동체의 항일 투쟁 역사는 방치하거나 지우기 바쁘다. 이날도 20여명의 한족 공산당원들이 7월 중국 공산당 창립을 맞이해 사상 강화 답사회를 열며 명동교회는 건너뛰고 윤동주 시비부터 순례를 시작했다.

명동교회 예배당을 건축한 김약연 목사는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등이 나온 명동학교 교장을 겸직했고, 캐나다 선교부가 세운 은진중학교와 명신여학교에서도 이사장을 역임했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은진중 교목이었다. 강원용 서울 경동교회 원로목사와 한국전쟁 흥남 철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 등 피난민 9만여명을 살린 현봉학 박사 역시 은진 출신이다. 명동교회 김 목사는 1919년 3월 13일 당시 북만주 일대 한인 다수가 참가한 3·13 룽징 반일시위의 실제적 지도자였다. 평양신학교 출신인 김 목사는 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일본이 서둘러 침략하는 걸 보니 서둘러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고, 42년엔 “나의 행동이 바로 나의 유언”이란 말을 남기고 룽징 자택에서 별세했다.

기장 총회 사무국장 이승정 목사는 “한신대가 김약연 기념사업회와 함께 학생들을 용정(룽징)으로 순례를 보내고 있었는데 교회 건물 상황은 전혀 몰랐다”면서 “대학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룽징(중국)=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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