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이를 홍보하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선 직장에서의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것 등 세 가지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 최현규 기자

“말 잘못하면 나도 신고할 거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첫날인 16일.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28)씨는 출근길에 직속 팀장으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이씨를 비롯해 단체 카톡방에 있던 다른 직원들은 줄줄이 “아닙니다”고 답을 달았다. 이씨는 “위아래 할 것 없이 회사 내에서 서로 말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회사 차원의 공지도 여러 번 있었던 만큼 업무 분위기가 꽤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건설회사 부장인 황모(56)씨는 이날 아침 회의 때 존댓말로 업무 지시를 했다. 황씨는 “존댓말을 쓰면 나도 모르게 하는 말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처음이라 어색하지만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게 서로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그동안 별 생각 없이 해왔던 일이 괴롭힘으로 인정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데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특히 회사를 오래 다닌 관리자급 인사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5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다. 퇴근 후 업무 지시, 허드렛일 및 술자리 참석 강요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나와 있지 않다.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이뤄졌는지가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법이 시행되기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직원들은 “내용을 잘 모른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법 시행에 맞춰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대대적으로 사내 홍보를 벌인 대기업과는 온도차가 있었다.

실제로 대형 카드사에 다니는 김모(30)씨는 “한 달 전부터 회사가 난리였다”며 “사내 공지사항의 절반 정도가 괴롭힘 금지법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천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27)씨는 “오늘부터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는지 몰랐다”며 “사내에서 이 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서울 소재 중소기업의 관리자급 직원인 조모(57)씨도 “아침 회의 때 잠깐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국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냐는 시큰둥한 분위기였다”고 소개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은 그간 직장 내에서 벌어지던 은밀하고 교묘한 따돌림, 부당한 업무 지시를 금지하고 징계토록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병원 직원인 강모(31)씨는 “처음에야 주변 시선을 의식해 조심하겠지만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처럼 결국엔 유야무야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직장 내 괴롭힘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십계명을 발표했다. 상사의 괴롭힘과 갑질은 취업 규칙에 명시된 기구에 신고하는 것이 좋고, 익명 신고도 가능하며, 계약직 노동자는 물론 파견 노동자도 적용 대상이라는 내용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갑질 제보 3건 중 한 건은 가해자가 대표이사”라며 “사장의 갑질 사건은 고용노동부가 근로 감독으로 전환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산하 조직 대응 지침에서 “노조가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 적극 개입해 성과주의 인사 기준을 개선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민아 박구인 방극렬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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