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9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17대 총선이 실시된 지 석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대의원들의 현장투표가 진행되는 막간에 깜짝 이벤트가 진행됐다. 당원 행사에 여흥을 돋우기 위해 으레 초대되는 인기가수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록밴드가 등단했다. 보컬을 정두언 의원이 맡았고, 기타는 후일 이명박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의원이 잡았다. 키보드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될 김희정 의원, 드럼은 정문헌 의원이었다. 색소폰을 분 심재철 의원만 재선이었고 모두 30대와 40대 초선의원들이었다. 밴드 이름은 ‘드림07’이었다. 2007년 17대 대선을 겨냥한 명명이었다.

청바지 차림에 흰 신발을 신고, 하얀색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정두언 의원은 ‘젊은 그대’를 열창했다. 원곡 가수인 김수철 못지않게 ‘방방 뜨는’ 공연이었다. 근엄하고 권위적인 국회의원의 고정 이미지를 깬 파격이었다. 깜짝 이벤트는 수구 및 기득권 집단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보수를 지향하겠다는 보수 야당의 쇄신 노력을 보여주는 일례였다.

정 전 의원은 밴드 이름처럼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의 선거전략을 총괄하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당선자 보좌역으로 권력의 중심이 됐다. 그러나 이후 그의 정치와 인생은 파란을 겪었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향해 ‘권력 사유화’ ‘상왕 정치’라고 맞서며 총선 불출마를 주장하다 권력 핵심에서 배제됐다. 2013년엔 저축은행 뇌물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법정구속돼 10개월 형량을 마쳤으나 이듬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치인은 명이 길다고 한다. 외향적 성격에, 정치이념에 대한 확신이 굳고 무엇보다 권력의지가 강해 멘탈이 쉬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노회찬 전 의원에 이어 1년 만에 정 전 의원의 죽음을 대하고 보니 일반론은 일반론일 뿐이다. 정 전 의원은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았다. 최근에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던 그에게서 공정하고 내공 있는 정치평론을 기대했는데, 그가 생각했던 길은 달랐나 보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이 따갑고 보수-진보 대립이 격해지기만 하는 이때 두 사람의 돌연한 공백이 더욱 아쉽다. 고단했을 심신이 부디 편히 쉬기를 바랄 뿐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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