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엔 자영업자 13명이 모여 있다.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뒷골목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이다. 다들 장사를 마치고 모인 터라 이미 자정이 넘었다. 용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지친 하루의 끝에서 서로 위로라도 하려고 모인 자리다. 난 지금 그들의 옆 테이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저녁엔 손님 두 명 받았어.” 김치찌개집 주인이 입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나도 서너 번 갔던 가게인데, 손님이 두 명이면 오늘 매출은 2만원 정도 될 거다. 주인은 자신이 가져온 김치찌개를 한 숟가락 뜨면서 이게 그렇게 맛있다고, 뜨거울 때 한 번 드셔보시라고 다른 상인들에게 권했다. 옆에 있던 가정식 카레집 주인이 10년 전 직장 다닐 때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공항이란 회사에 다녔어. 한 10년 직장 생활 해보니까 내 걸 해보고 싶더라고. 응? 물론 그때가 지금보다 벌이가 괜찮았지. 어? 이 김치찌개 진짜 맛있는데?” 김치찌개집 주인이 대답했다. “맛있는데 왜 손님이 없는 거죠?”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다들 이유를 몰랐으니까. 카레집 주인은 연희동에서 작게 음식점을 운영하다 2년 전에 이곳으로 옮겼다. 동시에 매출도 줄었다. 자리 탓인지 경기 탓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는 골목 맨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펍(pub)이다. 경의선 숲길이 조성되면 좀 나아지겠지, 이 생각으로 5년을 버텼다. 통장에 있던 돈을 조금씩 까먹으면서 가게를 지켰지만 이제 한계라고 했다. 요즘엔 단골들의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조회 수는 낮지만 영상을 보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얼마 전부터 1인 미용실 원장이 펍 주인에게 영상 제작법을 배우고 있다. 손님들 머리하는 영상을 올릴 계획인데, 문제는 손님이 거의 없다는 거다. 솜씨는 보장한다. 스타일에 민감한 나도 단골이 됐으니까. 잘 되는 가게 중에 솜씨 없는 곳은 별로 없지만, 솜씨가 훌륭해도 안 되는 가게는 수두룩하다.

이날 모인 자영업자들의 업종은 만두집, 선술집, 살롱, 스페인 음식점, 떡케이크 가게, 피맥집 등 다양했다. 각자 테이블에서 서너 명씩 따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모두를 집중시킨 문장이 김치찌개집 주인 입에서 나왔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이 골목을 사랑해 줄까요?”

홍대 쪽에 자주 오는 사람도 여기 골목이 있다는 걸 모르더라고요. 골목 입구에 안내판을 세울까요? 망리단길이나 힙지로처럼 이름을 붙입시다. 만우절 골목 어때요? 이 골목에 들어오면 누구나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거야. 골목에서 통용되는 쿠폰을 만들어 볼까요?

다들 골목을 살리기 위해 혼자 무수한 고민을 했었나 보더라. 생계가 걸린 문제니까.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다 보니 윤성희 소설 ‘베개를 베다’에서 아들에게 단골집을 만들어 주려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내세운 단골집의 조건은 다섯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맛있을 것. 이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걸 가장 어려워했다. 두 번째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 단골이란 집에서 입던 옷을 입고 산책하다 불쑥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는 비싸지 않을 것. 우린 늘 돈을 벌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네 번째는 주인이 주방 일을 할 것. 주인이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는 가게는 주방장이 바뀔 때마다 음식 맛이 변해서 단골로 삼을 수 없다. 다섯 번째는 주인의 나이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일 것. 30년 후, 중년이 된 아들이 무심코 가게를 들렀을 때 주인이 백발의 노인이 돼 카운터에 앉아 있다면 부모도 아내도 자식도 해줄 수 없는 위로를 그 백발의 노인이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위기라기에, 현장에서 직접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뭐라도 건질 게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글인데 가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맛있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고, 비싸지 않고, 주인이 주방 일을 하는 가게들이 망하고 있다. 모든 자영업자들의 꿈은 백종원이 왔다가는 게 됐다. 방송에 나오면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고, 대신 단골은 떠난다. 어떻게 하면 홍보나 마케팅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손님을 정성껏 대하는 가게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질 수 있을까. 정부의 자영업 대책은 김치찌개집 주인이 던진 질문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골목을 사랑해 줄까?” 그래야 30년이 지나도 가게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


이용상 뉴미디어팀장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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